[이슈앤인물]안준형, 젊은 회계사가 CFO로 사는 법

입력 2020-08-20 13:55수정 2020-08-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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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형 오아시스마켓·지어소프트 CFO가 20일 지어소프트 사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아시스는 최근 NH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을 준비 중이다. 박기영 기자 pgy@
“목표는 오아시스그룹을 다우키움그룹만큼 키우는 것입니다. IT기업이 모회사이니만큼 온라인으로의 확장성이 강점이죠.”

안준형 오아시스마켓·지어소프트 CFO(최고재무책임자)는 20일 이투데이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79년에 태어나 올해로 41세가 된 ‘젊은 CFO’다. 2005년 EY한영회계법인에 입사해 7년간 감사와 컨설팅 업무를 해오다가, 2012년 33살의 어린 나이에 스타트업 CFO로 전직했다. 이후 외국계 회사와 중견기업 CFO를 거쳐 2018년 1월 오아시스와 지어소프트에 합류했다.

오아시스는 온라인 식품배송업체로,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모토로 하고 있다. 현재 NH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모 회사는 코스닥 상장사인 지어소프트로 IT서비스 업체다.

그의 회계사 생활은 ‘오기와 열정’으로 정리된다. 2005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EY한영에 입사해 회계사로 사회생활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거래처는 외국계 회사가 많았는데, 외국계 클라이언트와 자유롭게 회화가 가능한 덕분이다. 유학 한 번 안 다녀온 그가 외국인 경영진과 소통이 가능해진 것은 어느 거래처에서 프랑스인 임원과 만난 경험 때문이다.

프랑스인 거래처 임원은 영어 회화를 못 하는 회계사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이를 분하게 여긴 그는 1년간 공부에 몰두해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될 수준까지 영어 회화 실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프랑스인 임원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때 갈고 닦은 회화 실력은 외국 투자자들을 상대로 영어 IR를 진행할 수 있었고, 해외 출장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이는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에게 상당히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고 했다.

“그때는 영어회화가 가능한 회계사가 적었습니다. 1년간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사실 오기였어요. 거래처가 생기면 잠도 설쳐가며 열심히 봤습니다. 고객사였던 모 그룹사 전체 장부를 살핀 적도 있었죠. 열정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좋게 봐주시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회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간 일했던 그가 전직을 결심한 것은 회식자리에서 거래처 사장이 건넨 말 때문이다. 거래처 사장은 ‘숫자만 바꾸지 말고 세상을 같이 바꾸지 않을래요?’라고 물었고, 안 CFO는 이 말이 무척 멋져 보였다고 했다.

이 말 한마디에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던 회계사 생활을 포기하고, 설립한 지 1년 된 스타트업에 CFO로 전직했다. 컨설턴드가 아닌 조직 구성원으로 참여한 기업은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첫 스타트업인 만큼 성장이 빨랐고, 인도네시아에서 신사업을 런칭하고 다양한 외부 투자부터 내부 조직 관리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전직 초기에 어려움도 많았다. 회계사와 CFO의 차이에 대해 자동차 정비에 빗대 회계사가 매뉴얼과 규정만 고려한다면, CFO는 규정뿐만 아니라 매일 그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려웠던 점은 ‘숫자 지상주의’ 때문이다. 감사업무와 컨설팅업무를 해온 영향으로 사람보다 숫자를 먼저 살피는 것에 익숙했고, 이는 현실과의 괴리로 다가왔다고 했다. 여전히 회계사답게 보수적 성향은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감사’에서 ‘CFO’로 성장했다.

위기도 있었다. 오아시스에 합류하기 직전인 2017년 12월, 그는 회계업계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타트업과 외국계 회사를 거쳐 40여 년의 업력을 가진 중견 회사 CFO를 맡고 있었는데, 자신의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느꼈다. 오랜 업력을 가진 회사였던 만큼 많은 것이 시스템화돼 있었고, 이는 조직의 경직성으로 이어졌다. 마침 회계업계가 신외감법 도입 후 호황을 맞이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런 그를 CFO로 붙잡은 것은 우연히 만난 김영준 오아시스 그룹 의장이 건넨 한마디였다.

“아직도 그 말이 생생합니다. 김 의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제 상황을 설명했더니, 한마디 하시더군요. ‘아직 젊잖아요?’. 재충전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 오기만 했던 제가, 30대를 마감하고 40대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는 지어소포트에 합류해 사실상 IR조직을 신설했다. 당시 지어소프트의 주가는 1200원 수준. 현재 주가가 1만~1만4000 원을 오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10% 수준에 불과했다. 지어소프트 본연의 기업가치도 저평가됐지만, 자회사인 오아시스의 성장 잠재력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던 탓이다.

투자자들에게 회사를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 회사로 애널리스트와 기관 투자자 등을 불렀을 때,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NDR부터 개인, 기관을 가리지 않고 매일 같이 찾아다니며 IR를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오아시스가 스타트업 성향이 강한 회사였던 만큼 재무 결산이나 인사 프로세스 기반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월 결산 개념조차 없었다고 했다. 젊은 재무기획실원들과 야근을 반복해가며 이슈를 해결하고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첫 월 결산이 나왔을 때는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오아시스는 2018년 매출액 1111억 원에서 지난해 1423억 원으로 28%가량 증가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월별 매출 증가가 눈에 보일 만큼 커지고 있어, 실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2월 설 연휴가 끝나고 이낙연 국무총리가 온라인 쇼핑을 권장하면서 이용량이 급증한 덕분이다.

“오아시스에 합류한 이후, 물류창고를 3번 확장했습니다. 2018년 경기도 에서 서울 장지동으로 옮겼을 때, 체감상 5배는 커졌습니다. 지난해 성남으로 다시 한 번 이전하면서 또 5배가량 커졌죠. 현재는 성남 센터 바로 옆에 2센터를 건립 중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용고객이 늘었고, 이들이 믿을 만한 제품이란 걸 알아준 덕분이죠.”

고속 성장 배경 중 하나는 지어소프트의 IT기술력이다. 모 회사가 IT기업이라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빠르고 상황 맞춤형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 CFO는 유사 사례로 다우키움그룹을 꼽았다. 회계사 시절 컨설팅을 맡아 성장 저력을 확인했다고 했다. 지어소프트와 오아시스도 다우키움그룹처럼 성장시키는 것이 그의 목표다.

‘후배 회계사에게 이른 나이에 CFO 제안이 들어온다면 전직을 권할 생각이 있냐’고 묻자 ‘그렇다’고 즉답했다. CFO의 매력에 대해선 ‘사업가 바로 옆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스릴과 성취감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전직 당시 반신반의했지만, 겪어보고 나니 30대라면 무조건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좌우명으로는 ‘경영은 사람을 다루는 예술이자, 숫자를 다루는 과학’이라는 책 인용구를 제시했다. 회계사 시절 좌우명은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고, 관리되지 않는 것은 개선되지 않는다’였다. 어린 시절부터 CFO로 근무하며 ‘숫자 지상주의’가 ‘인본주의’로 변했다. 재무상 숫자도 중요하지만, 조직원 하나하나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순리를 따르는 게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면 잘 될 것이란 믿음이 있습니다. 오아시스 지어소프트도 화려하게 이런 건 아니지만, 순리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원칙 지켜가면서 열심히 할 테니까 잘 지켜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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