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림 국제경제부 기자
하지만 최근 들어 그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러시아가 야심차게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가 조롱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내 딸도 백신을 맞았다”며 안전성을 강조했지만, ‘선승인 후시험’이라는 전무후무한 선례를 남겨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백신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미국에 “러시아 백신도 한 번 써 보라”며 러브콜을 보냈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미국 보건당국 관계자로부터 “러시아산 백신은 사람은커녕 원숭이한테도 접종할 생각이 없다”는 굴욕적인 소리까지 들었다. 이 밖에도 영국, 독일 등이 공개적으로 러시아의 백신에 불신감을 나타냈다.
푸틴 대통령이 이런 치욕을 겪으면서도 백신 장사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장기 집권을 위한 구실이 필요한 탓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초 국민투표를 거쳐 개헌을 단행했다. 여기에는 자신의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는 특별 조항이 포함됐다. 개정 헌법에 따라 푸틴은 2036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론은 예전만큼 호의적이지 않다. 한때 89%까지 치솟았던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6월엔 59%까지 떨어졌다. 러시아 극동부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노보시비르스크 등 16개 지역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옛 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여전히 러시아인들의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여기서 착안해 ‘세계 최초’ 백신의 이름을 지은 것은 옛 강대국의 향수를 불러와 상황을 타개해보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백신에 의지해 애국심 장사를 하겠다는 건 푸틴의 절박함만 드러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