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부동산 정책, 욕망과의 전쟁인가

입력 2020-08-10 07: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최근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한 식사 자리에서 역시나 부동산을 주제로 한 대화가 오갔다. 40대 가장은 아이들 학교 진학을 감안해 다른 동네로 이사해볼까 생각하다가 대출이 아예 불가능해져 허탈하다고 했다. 30대 기혼자는 2세 계획에 맞춰 집을 사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전셋집의 매매 가격이 1년 사이에 1억 원 이상 오르는 걸 보고 ‘영끌’을 해도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아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했다. 20대 미혼자는 진작에 전셋집 대출을 받아놓을 걸 이젠 집을 사기는 커녕 전셋집마저 늘리기 어려워져 후회막심이라고 했다. 언론 보도로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직접 당사자들의 사연을 들으니 그들의 걱정과 분노가 고스란히 전달돼 내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저금리에 임대차 제도 변화와 보유세 부담까지 더해져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월세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은 “모든 사람이 강남 살 필요 없다”(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대한민국 국민이 평생 집의 노예로 사는 걸 벗어난 역사적인 날”(윤호중 법사위원장), “전세는 소득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운명을 지닌 제도이고,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며 말의 성찬을 쏟아낸다.

하지만 월세 시대는 대다수의 젊은세대에게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꾸지 말란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전세와 월세의 차이는 은행에 낼 돈을 집주인에게 내는 정도의 그런 간단한 차이가 아니다.

그동안 전세는 주택을 소유하기 전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활용돼 왔다. 전세 비용을 올리면서 집 크기를 늘리다가 결국 은행 대출을 보태 내 집을 사는 것이 국민 대다수가 살아온 삶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면 그만큼 자산 축적이 어려워지게 된다. 한마디로 전세 비용은 집을 빌렸다 돌려받을 수 있는 ‘내 돈’이지만 월세는 집주인에게 주고 돌려받을 수 없는 ‘사라지는 돈’이다. 만의 하나 월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는 현금 유동성이 갑자기 부족해질 경우 점점 집 평수를 줄이거나 주변부로 밀려나는 위험 부담도 전세보다 더 커진다.

현 정부 들어 20차례가 넘는 고강도 부동산 규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는 집 값에 불안감이 극에 달한 3040세대는 급기야 ‘패닉 바잉’이라는 행위로 불안에 저항하고 있는 것 같다. 은퇴가 코 앞에 닥쳤는데 살고 있는 집 한 채로 보유세 폭탄을 맞은 중장년층보다 앞으로 영영 내 집을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젊은 세대의 공포가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실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최근 만 25∼39세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복수응답)한 ‘밀레니얼 세대, 신투자인류의 출현’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최우선 재무적 목표로 ‘주택 구입을 위한 재원 마련’(31%)을 꼽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재테크 관심은 서점가의 책 판매에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가 올해 주식, 부동산투자 등 재테크 서적 구매자 연령을 분석한 결과 30대(38%)와 20대(15%)가 5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 주(7월30일~8월5일) 예스24, 인터파크도서, 교보문고 등의 베스트셀러 집계에는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부의 대이동’, ‘돈의 속성’, ‘킵 고잉’ 등 투자 관련 서적이 10위권에 대거 올랐다.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내 집 한 칸 갖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아니, 인간 본능을 거스르는 정책이 오히려 시장을 더 망가뜨리고 국민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든 사례를 그간의 수많은 역사가 이미 보여주었다.

더구나 지금 한국에서 집을 사고 싶어하는 20~40대는 적어도 취업부터 결혼, 자녀 출산, 교육, 노후 준비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헬조선’의 각종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가 있는 이들이다. 정부가 치밀하지 못한 수십차례 부동산 정책에 땜질에 땜질을 거듭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팍팍한 젊은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의 꿈과 욕망까지 가로막지는 않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hylee@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