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통계청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1225만 가구 중 586만 가구(46.4%)가 맞벌이 부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는 가구는 무려 250만.
손자 손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조부모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주지만 감당하기 벅찬 육체적 노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손주 육아를 담당하는 조부모의 평균 노동 시간은 주 47시간으로 주 40시간 일하는 일반 직장인보다 노동강도가 높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국립국어원은 조부모가 손주를 보다 몸과 마음에 탈이 나는 현상,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를 제시했고 이 단어는 10년 가까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황혼 육아가 자연스러운 사회 문화로 자리 잡으며 손주 돌봄으로 인한 조부모의 건강 문제도 만연한 것이다.
손주병에는 허리와 관절 등 많은 근골격계 질환이 포함되지만 대표적으로 또 흔하게 발병하는 질환은 바로 '손목건초염'이다. 특히 4계절 중 활동량이 가장 많고 습하고 더운 여름철에 발병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목 건초염은 손목 여러 개의 힘줄을 감싸고 있는 막에 생긴 염증을 말하며 이 병을 처음 소개한 스위스 의사 이름을 따서 드퀘르벵이라고 하기도 한다. 주로 손가락의 근육과 힘줄이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아 발생하므로 육아,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에게 발병률이 높다. 걸레를 짜고 아이를 들어 올리는 등 상당시간 반복적인 관절 사용이 주원인이다.
특히나 체중이 5~10㎏ 이상 나가는 손주를 수시로 안고 달래고 또 씻기는 과정에서 이미 노화가 진행된 근육과 관절 등에 무리한 하중과 압력이 가해지는데 이는 건초염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이와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통계정보에 따르면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 맞벌이 가구의 증가로 건초염 환자도 매년 3~6만 명씩 늘고 있는 추세이며 지난해 건초염 환자(약 165만 명) 중에서는 통상 손주를 보는 나이인 55~69세까지의 중장년층 환자(약 50만 명)가 30%를 차지한다.
건초염의 증상은 ▲손목에 강한 압박이 느껴지고 ▲통증이 손목, 엄지손가락 주변으로 퍼진다. ▲특히 엄지손가락 쪽 손목의 힘줄을 눌렀을 때 ▲손목을 움직이거나 엄지손가락을 굽힐 때 통증을 느낀다. ▲손목이 붓기도 하고 ▲빨갛게 부어오르거나 ▲열감이 있을 때도 있다. 아울러 ▲움직일 때 마찰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때문에 손잡이를 돌리거나 프라이팬을 드는 동작조차 어려울 수 있고 글씨를 쓰거나 젓가락질 또한 어렵게 된다.
건초염은 핑켈스타인 테스트로 쉽게 자가진단할 수 있다. 엄지를 감싼 후 주먹을 쥐고 손목을 아래로 꺾어보는 방법이다. 이때 엄지손가락과 이어지는 손목 부분에서 통증이 있다면 건초염이 의심된다. 손목에 통증이 느껴지는 증상이 비슷해 '손목터널증후군'과 헷갈릴 수 있으나 건초염은 염증에 의한 통증이 주 증상인 반면 손목터널증후군은 신경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주로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이영민 제일정형외과병원 관절센터 원장은 "건초는 힘줄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으로 힘줄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조직이다. 단순한 손목 통증이라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라며 "초기에는 간단한 약물로 완치할 수 있지만 방치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치료의 강도와 재발 확률은 높아지므로 조기 진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손목 건초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근육의 신경을 이완시키기 위해 주먹을 가볍게 쥐고 원을 그리듯 손목을 돌려주는 스트레칭을 수시로 하면 도움이 된다. 또 손가락이 천장을 향하도록 한쪽 팔을 쭉 펴준 다음 반대쪽 손으로 쭉 편 팔의 손목을 가볍게 젖혀주는 동작이 좋다.
만일 건초염 초기 증상이 있다면 며칠 동안 손목 사용을 자제하고 붓거나 열감이 있다면 냉찜질을 해주도록 한다. 통증만 있다면 온찜질로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 손목을 움직이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손목을 고정하는 밴드 등 보조장치를 하는 것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