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한 토막] 안갚음과 안받음

입력 2020-06-2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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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라 편집부 교열팀 차장

반포지효(反哺之孝). 진(晉)나라 무제(武帝) 때 신하 이밀(李密)이 늙으신 조모를 모시기 위해 한 말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당시 무제가 이밀을 아껴 높은 관직을 내리고자 했지만, 이밀은 “미물인 까마귀도 어미 새의 은혜에 보답코자 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늙으신 조모를 끝까지 봉양할 수 있도록 헤아려 달라”며 관직을 사양했다고 한다. 이후 자식이 커서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 받들어 모시는 일을 ‘반포’, ‘반포지효’라고 했다.

이와 같은 의미의 순우리말이 있다. ‘안갚음’이다. 그런데 안갚음을 ‘앙갚음’과 헷갈려 오자(誤字)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앙갚음은 ‘내가 남에게 해나 불이익을 당했을 때, 그 사람에게 똑같이 해나 불이익을 돌려주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복수와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그는 그동안 받아온 모욕에 대한 앙갚음을 단단히 했다” “앙갚음은 또 다른 앙갚음을 낳는다”처럼 쓸 수 있다.

반면, 안갚음은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을 의미하는 말로, 자식이 자라서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 일을 뜻한다. “어릴 적 갖은 말썽으로 부모 속을 썩였던 그가 어른이 되더니 지극정성으로 부모께 안갚음했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안갚음’에서 ‘안’을 ‘아니’로 오해해 부정적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안’은 ‘마음속’ ‘가슴속’을 뜻한다. 조선 단종 때 시인 왕방연의 유명한 시조의 한 시구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에서 알 수 있듯, 여기서 ‘안’은 ‘마음속’을 의미한다.

자식의 봉양을 받은 부모는 ‘안받음’을 했다고 말한다. 안받음도 순우리말로, ‘자식이나 새끼에게 베푼 은혜에 대해 안갚음을 받는 일’을 뜻한다. “우리 아들이 효도한다고 하니 이제 안받음할 일만 남았네” “자식이 안갚음하니 부모는 절로 안받음하게 되네”와 같이 활용할 수 있다.

복수를 의미하는 ‘앙갚음’이라는 단어가 일반화하다 보니 순우리말인 ‘안갚음’ ‘안받음’이 설 자리를 잃어 낯설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것도 안갚음하는 것이겠다.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이 안받음하셨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퍼져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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