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대전살이'… 6·17 대책에 '맹모 이사길' 막혔다

입력 2020-06-1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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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 강요' 대책으로 대치동ㆍ목동 등 학군지 아파트 전세 품귀 우려

#1. 서울 송파구 잠실동 우성아파트에 사는 G씨는 반 년 앞으로 다가온 전세 계약 탓에 고민이 깊다. 1년 전 그는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도 기다리고 아이 교육도 챙길 겸 학군이 좋다는 아파트를 찾아왔다. 이번 주 들어 그는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집을 내줘야 하는 게 아닌가 불안하다. 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통해 내년부터 재건축 조합을 설립하는 아파트엔 집주인이 2년 이상 실거주해야 입주권을 주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당장 입주하지 않더라도 이런 이유로 전세 물건이 귀해지면 전셋값을 올려주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G씨는 아이 전학을 감수하고 서울 밖 '학군지'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2. 탄천 건너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집을 가진 I씨 고민은 반대다. 그는 2017년 장기임대사업자를 등록하고 이 아파트를 세놨다. 8년 이상 장기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소득세와 양도세 등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정부 약속을 믿고서다. 아파트가 학군으로 유명한 만큼 전세 수요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6ㆍ17 대책으로 오는 2025년까지 은마아파트가 조합 설립과 분양을 마친다면 그는 입주권을 못 받을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아파트 임대를 그만둘까 고심 중이다.

6ㆍ17 부동산 대책 이후 명문 학교와 학원가로 유명한 이른바 학군지 아파트 주변이 뒤숭숭하다. 집주인은 세를 계속 놓을지 고민하고 세입자는 자칫 집을 빼주거나 임대료가 올라가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일관성 없는 무리수 정책이 시장에 혼란만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집주인이 방 빼라는데 애들 학교는"… 맹모 울리는 집값 규제

그간 서울 강남권과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 등 유명 학군지 주변 주택시장은 대체로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졌다. 이들 지역에 재건축을 노리는 노후 아파트 단지가 많은 덕분이다. 시설 노후로 집주인이 직접 살려는 유인은 적고 자녀 교육을 위한 임대 수요는 많으니 매매가보다 싼값에 전셋ㆍ월셋집이 나왔다. 재건축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은 27.2%로 일반 아파트(53.82%)의 절반 수준이다. 자녀가 학교에 다닐 동안에만 대치동 학원가 근처에 전셋집을 얻는 '대전(대치동 전세) 살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6ㆍ17 대책은 이 같은 풍조를 뒤바꿀 수 있다. 무작정 세를 놓다가는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지 못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재건축 아파트를 장기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집주인 가운데는 I씨처럼 임대 중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장기임대사업자가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집을 세 놓지 않으면 그동안 감면받았던 세금을 토해내고 과태료도 최대 3000만 원까지 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임대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입주권을 받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겠다는 의도다. 임대사업자 가운데선 정부를 믿고 집을 세놨더니 뒤통수를 맞았다는 원성도 나온다.

◇국토부, 장기임대사업자엔 예외 인정 만지작

앞으로 1년간은 재건축아파트를 노리고 강남권 아파트를 사는 이 중에 세를 못 놓는 이도 나온다. 서울시가 내년 6월까지 대치동과 잠실동, 청담동, 삼성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에서 대지지분이 일정 면적을 넘는 아파트(주거지역 기준 18㎡)를 사면 2년 동안 임대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전ㆍ월세 주택 공급이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입자들도 주택 수요 억제 정책이 전ㆍ월세 물량을 줄이고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행법으론 집주인이 세놓았던 집에 살겠다고 퇴거를 요청하면 세입자가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퇴거를 피한다 해도 물량이 줄면서 임대료 오름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 가뜩이나 서울지역 전셋값은 지난해 7월부터 계속 상승하는 중이다. 여기에 정부ㆍ여당이 전월세 상한제, 주택 임대차 계약 갱신 무제한 허용 등을 공론화하면서 이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임대료를 크게 올리거나 임대를 그만두겠다는 집주인도 늘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반발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측은 "장기임대사업자 현황을 파악할 계획이다"며 "실태 파악 후에 제한적으로 예외를 둘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예외를 둔다 해도 일관성 없이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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