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칼럼] 한국인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입력 2020-06-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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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인류의 선조를 설명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네안데르탈인은 약 45만~40만 년 전에 출현하여 오늘날의 서유럽에서 중앙아시아까지 퍼져 살았다. 근래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어 이들이 전 지구적으로 분포되어 살았다고 인식한다. 호모(Homo) 속(屬)에 속하는 현생 인류와 가장 가까운 고인류인 이들이 동굴 등에서 살면서 여러 차례의 빙하기를 헤쳐 나갔는데 이것은 나름대로의 생존전략, 즉 높은 생존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들은 대체로 4만 년 전을 전후해 지상에서 사라졌다. 이들이 사라지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과의 경쟁에서 밀렸거나 현생 인류가 가져온 전염병에 의한 감염 등 몇 가지 설이 있다. 그동안의 교과서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현대인보다 머리는 다소 크고 팔다리는 약간 짧으며, 털이 많은 구부정한 모습이다. 흔히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원시인’의 모습으로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즉 우리의 직계 선조로 인식하는 크로마뇽인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네안데르탈인들을 현생 인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해 유인원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똑바로 선 균형 잡힌 자세가 호모사피엔스의 특징 중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학자들이 현대인들의 선조로 생각하는 크로마뇽인은 네안데르탈인과는 전혀 다른 별종이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두 종이 같은 기간 생존했지만 종이 다르므로 혼접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고릴라와 원숭이가 혼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로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상당 기간 서로 접촉하면서 혼혈이 나타났다고 결론 내렸다.

과학의 장점은 과거의 지식을 현대의 지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근래의 연구로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상당 기간 서로 접촉하면서 혼혈이 나타났다고 결론 내렸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박사는 유전자 분석 기술을 활용하여 4만여 년 전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복원하였다. 페보 박사는 놀랍게도 현생 인류 게놈에 네안데르탈인 게놈이 2.5~5% 들어있는데 특히 유라시아인의 유전자 중 4%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으로부터 왔다고 발표했다. 현재의 유라시아인에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DNA가 남아있다는 것은 한국인에게도 이들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니소바인은 2008년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호모 속의 별개 종으로 3만∼5만 년 전에 유라시아에 존재했다. 즉 수만 년 전 시베리아를 지나던 한 현생 인류 집단에 데니소바인이 유입되었고 그 후 어느 시점에서 멸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생 인류는 원래 인간백혈구(HLA) 다양성이 제한된 작은 집단이었다. 그러나 다른 인간종과의 교잡을 통해 다양한 HLA 변이 유전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생존력이 강해졌고 질병 저항력도 높아져 거대 집단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가장 놀라운 연구 성과는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처럼 똑바로 서서 걸어 다녔다는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마르틴 호이슬러 박사가 새롭게 복원한 네안데르탈인은 그동안 알려진 잘 발달된 가슴과 약간 구부정한 모습을 한 ‘동굴 거주자(caveman)’와 상당히 다르다. 현대인보다 폐 용량도 더 크며, 척추가 현대인보다 더 곧추선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네안데르탈인들이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굴곡된 요추 부위와 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유전자 분석의 결과는 놀라운 아이디어로 전개된다. 페보 박사는 발전된 유전자 기술로 네안데르탈인을 복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내용은 현대인과 복제된 네안데르탈인 모두 건강할 때 씨름을 하면 누구에게 판돈을 걸까 하는 점이다. 워싱턴주립대학의 팀 쾰러 박사는 네안데르탈인에게 걸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상체가 매우 강하고 신체 구조가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대일 경기가 아니라 협동과 팀워크가 요구되는 경우에는 현대인에게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협동과 팀워크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지구의 패자가 되도록 만든 요인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로 한국인에게도 유전자가 들어있는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과 다름없다는 것은 상당한 위안을 준다. 학창 시절에 네안데르탈인과 같다고 놀림받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을 능가한다는 것은 오히려 칭찬이 되기 때문이다. 과학은 그래서 재미있다.

참고문헌 :

『남자도 임신할 수 있을까?』, 빌 손스, 도서출판 한승, 2008

『뼈가 들려준 이야기』, 진주현, 푸른숲, 2015

「유전자 한개가 초기 인간과 유인원 갈라」, 연합뉴스, 2002.08.27.

「당신에게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흐른다면?」, 강석기, 더사이언스, 2013.03.25

「임도경의 컬처토크 ? 나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임도경, 조선일보, 2014년 10월

「임도경의 컬처토크 ? 아프리카인이 우리의 선조인 까닭」, 임도경, 조선일보, 2014년 11월

「원시인류 네안데르탈인 한민족과 혼혈 가능성은?」, 윤신영, 과학동아, 2011.02.25.

「‘엄마는 네안데르탈인, 아빠는 데니소바인’」, 김병희, 사이언스타임스,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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