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공동대표
공정거래위원회의 배달앱 업체 결합심사에 세간의 관심이 높다. 국내 배달앱 시장 2, 3위인 ‘요기요’와 ‘배달통’ 운영사 딜리버리히어로는 시장 1위 ‘배달의민족’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12월 기업결합심사를 공정위에 신청했다. 공정위가 이 합병을 승인하면 독일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는 국내 배달앱 시장을 사실상 100% 장악하게 된다. 닐슨코리아의 2018년 말 기준 국내 배달앱 시장 점유율은 배민 55.7%, 요기요 33.5%, 배달통 10.8%로, 3개 앱의 시장점유율을 합하면 100%다.
이에 따라 배달앱을 통해 사업을 하는 음식점 업주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단체들은 배달앱 합병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배달앱이 소비자에게 각종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지만, 특정업체가 독과점할 경우 자영업자와 중소상인에게 배달 수수료 인상 부담으로 이어지고 소비자도 선택의 기회를 빼앗길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다.
소비자단체들도 엄격한 결합심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는 “정부가 독과점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강화해 소상공인과 소비자의 피해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소비자시민모임도 배달앱 결합심사에서 업체들의 소비자 권익 보호와 시장에서의 공정한 역할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따질 것을 공정위에 요구했다.
배민의 요금제 개편 과정에서 공정위가 곧바로 엄격한 심사 방침을 밝힌 데는, 배민이 경쟁 사업자나 이해 관계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격정책을 바꾼 것은 시장지배력 때문에 가능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재신 공정위 사무처장은 “기업결합과 관련한 독과점 여부를 심사받는 도중 수수료 체계를 크게, 뜻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해당업체(배달의민족)의 시장 지배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결합심사 중인데도 배민이 요금제 개편을 밀어붙인 걸 보면, 합병이 성사될 경우 시장을 완전 장악한 독점기업이 앞으로 어떤 횡포를 부릴지 짐작이 된다. 딜리버리히어로로서는 한국 시장에서 배민 인수자금 40억달러(약 4조8천억원)를 가능한 빨리 회수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다. 투자은행업계는 지난해 12월 딜리버리히어로와 배민의 합병 계약이 발표된 이후 배민에 대한 경영주도권이 딜리버리히어로에 넘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배민이 요금체계를 변경해 사실상 수수료를 올리기로 한 것도 경영주도권을 쥔 딜리버리히어로가 자본의 논리에 지나치게 매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수자금 조기 회수에 혈안이 돼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 폭락에 허덕이는 한국 영세 음식점들과 소비자들의 반발 가능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수수료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플랫폼업체의 독점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은 배달앱의 수수료보다 데이터 독점을 더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배달앱 등장 이후 어디에 사는 누가 언제 어떤 메뉴를 주문했는지 가맹점의 거래 정보를 배달앱업체만 갖게 됐다. 미국에서도 배달앱 가맹 음식점들이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배달 고객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게 돼, 계절 메뉴 개발과 고객 맞춤형 마케팅을 펼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배달앱 업체가 축적한 데이터로 가맹점들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방대한 데이터를 무기로 음식시장을 지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배달앱 업체들은 소비자 정보를 분석해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추천하거나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우버이츠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음식점들에 유료 컨설팅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공급이 달리는 지역에 배달앱업체가 직접 배달 전문 식당을 차려 기존 음식점들을 입점시킨 사례들도 생겨나고 있다.
국내 배달앱 시장에도 이런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난해 11월 배민이 선보인 비대면 주문 결제 서비스 ‘배민오더’도 음식점 업계에는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배민의 초기 영업 때처럼 배민오더 역시 수수료 무료를 내세워 식당점주들을 끌어모으며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배민오더를 이용하는 식당 주인들은 일시적으로는 매출이 늘겠지만 다른 식당들도 배민오더를 이용할 경우 결국 포장고객, 매장 방문고객 매출까지 수수료를 내게 돼 수익구조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내 배달앱 업체가 음식점업계를 사실상 지배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소비자단체와 음식점업 관련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뿐 아니라 정치권도 배달앱 업체간 합병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수수료 개편 철회와 사과에도 독과점 폐해가 우려되는 근본 문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플랫폼 사업, 빅데이터 산업 같은 혁신산업은 네트워크 효과(어떤 재화의 수요자가 늘어나면 그 재화의 객관적 가치도 더불어 커지는 효과)가 큰 경우가 많아 새로운 형태의 독과점이나 경쟁 제한적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각국의 경쟁당국이 혁신산업에서의 불공정행위 규제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이유다. 공정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입법취지에 맞는 결합심사 결과를 내놓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