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길을 걸으며 - ②길과 문(門)

입력 2020-05-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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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일렉트릭 사장

이른 새벽, 여명과 함께 길을 나선다. 기적과 같이 피곤함이 사라지고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어젯밤 너무나 익숙해서 그대로 머물고 싶었던 마음이 언제였냐는 듯이 오늘의 태양이 반갑다. 뚜벅뚜벅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마치 껍질을 벗어 던지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아기 거북이처럼 무서울 것도, 거칠 것도 없다. 오늘 하루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나아가는 단 하나뿐인 징검다리다. 길을 걷다 새로운 마을에 들어서게 되면 문(門)을 만난다. 어떤 마을의 입구는 성문이기도 하고 어떤 마을은 좁은 골목이 입구를 대신하기도 한다.

문을 열면 서로 다른 두 세상이 연결되고, 문을 걸어 잠그면 그 문은 벽이 되어 세상을 단절시킨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는 아직도 열리지 않은, 오래된 단단한 문이 있다. 2년 전 판문점 도보다리의 새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문이 열리기를 기대했건만 아직도 굳게 잠겨 민족의 가슴에 빗장을 치고 있다. 한반도에 남아 있는 얼음벽이 녹아 두 세계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연결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해 본다. 문이 열리기 위해서는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관계 속에서 오해의 벽을 허물면 신뢰가 쌓이고, 이렇게 쌓인 믿음이 이해의 문이 된다.

코로나라는 감염병은 인류에게 연결을 끊을 것을 요구한다. 바이러스는 연결을 통해 확산되고 인류는 아직도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가 격리(stay at home), 봉쇄(lock down), 입국 제한 등 예전에는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의미의 용어들이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착한 선택으로 쓰인다.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근대 문명의 철학적 기반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연결을 위한 인간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연결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기 어렵다면 첨단 IT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연결이 대체할 것이다. 교육도 비즈니스도 문화도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나무나 벽돌로 된 문을 대신하여 컴퓨터와 휴대폰의 모니터가 연결의 문이 되고 있다.

문의 또 다른 의미는 ‘마디’이다. 하나의 세상을 마무리하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마디’이고 ‘단락’이다. 2005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이라는 국책 사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작은 역할을 했던 적이 있다. 고준위 폐기물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두고 중저준위 폐기물을 분리하여 처분장을 만들었다. 남겨둔 숙제가 크다는 이유로 19년 묵은 국책 과제를 해결했음에도 그 의미를 평가 절하하는 사람도 있었다. 100개의 문이 있는 집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열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완전한 해결까지는 아직 많은 문이 남았으나 첫 번째 문을 열지 않으면 남은 아흔아홉 개의 문도 열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인류의 삶은 문 하나하나를 넘으면서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간다.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길을 걷다가 만나는 문과 같다. 어떤 문을 어떻게 여는지가 역사를 결정한다. 오늘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에게 그대로 남겨진다. 앙드레 지드는 그의 소설 ‘좁은 문’에서 사랑을 위해서 자기의 욕심을 희생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한다. ‘광장’과 ‘회색인’의 작가 최인훈은 딸에게 권하는 마지막 추천 도서로 ‘좁은 문’을 꼽으면서 사람이 어찌 사는 게 옳은 길인지 괴롭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남북이 이념으로 갈라진 사회에서 중도의 합리적 지식인의 삶을 어렵게 그리고 있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굳이 성경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좁은 문을 선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바른길은 좁은 문을 지나야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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