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바이러스도 차별한 대한민국 여성

입력 2020-04-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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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 (사)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지난달 22일 미국의 유명 팝가수 마돈나는 SNS에서 “코로나19는 ‘위대한 균등자(the great equalizer)’이다. 이 진귀한 바이러스는 당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유명한지,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몇 살인지를 상관하지 않는다. 많은 방식으로 우리를 모두 똑같게 만든 것은 코로나19의 끔찍함과 위대함”이라고 하였다. 정말 마돈나가 말한 것처럼 코로나19는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고 위대한 균등자였든가.

최근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 중 여성 비율이 약 60%로 남성의 40%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사회 구조상 의료지원 업무를 하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의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소득이 적고 고용이 불안정하여 여유 있게 재택근무를 할 환경이 아니다. 이번에 슈퍼전파자로 지목된 구로콜센터의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콜센터는 주로 여성 근로자들이 좁은 자리에 집단으로 근무하는 형태이다. 이들은 각자의 상담콜 수의 실적으로 보상을 받고, 또 모든 상담사의 콜 수는 외주업체의 실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이들은 아파도 직장에 출근해 실적을 올려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금융업을 비롯해 소비자 응대 업무를 해야 하는 대기업은 콜센터 운영을 외주화하였다. 콜센터 직원들은 외주업체 소속으로, 원청업체 직원들보다 상대적으로 임금도 훨씬 낮고 고용도 불안정하다. 물론 원청인 금융사에서도 남녀 간 불평등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사가 도산하면서 10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하였다. 그 후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금융권의 구조조정으로 사라졌던 일자리는 비정규직 여성들로 대체되었다. ‘2차 정규직’으로 불린 비정규직 여성들은 고용안정을 제외하고는 승진과 임금에서 정규직과 차별되어, 마치 귀족과 평민의 신분 구조나 다름없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밀레의 그림 ‘이삭줍기’는 어디에서나 복사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었다. 당시 ‘이삭줍기’는 내게 단순히 농가 여성들의 목가적인 풍경을 그린 아름다운 그림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2016년 가을, 예술의 전당에 처음 전시되었던 이 작품은 내게 확연히 다른 그림이었다. 추수 후에 떨어진 이삭을 최대한 많이 주우려고 허리가 휘도록 엎드려 일하는 여성들과 이삭줍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멀리서 말을 타고 감시하는 보안관, 그리고 세 여인 등 뒤에서 수레가 터질 만큼 높이 쌓은 수확물을 싣고 떠날 채비를 하는 지주의 모습이 보였다. 처절한 빈곤과 넘치는 풍요가 공존하는 불편한 진실의 그림이었다. 이번 코로나19로 집단감염에 노출된 취약계층의 여성들을 보면서 19세기에 ‘이삭줍기’를 하던 빈곤층의 여성이나 21세기인 지금의 여성이나 신분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중국 다음으로 많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관리하여, 현재 대한민국은 많은 나라로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신속한 방역대책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있는 모범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고 불평등한지를 알게 되었고, 또한 우리의 보편적 건강보험 체계가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는 여전히 대한민국 취약계층 여성들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주었다. 이제껏 이들의 사회적, 경제적 기여에 대해 평가하지도 않았고 적절한 대우도 해주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미국의 코로나 사태가 엄중함에도 경제 재개를 서두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 참여자들은 시장의 수익 시즌을 앞두고 출구전략을 짜고 있다. 벌써 어떤 상품으로 수익을 낼지에 대한 보고서도 난무하다. 아마 몇 달 후면 언제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는지 모두 잊고, 이번 사태로 드러난 불평등 문제는 뒷전으로 밀릴지도 모른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도 미국이 코로나19에 취약한 이유로 ‘불평등 구조’를 지목했다. 또한, 시장이 주도하는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 활동이 물건을 만드는 데서 돈을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은행가들에 대한 보상은 후해졌지만 전통적 근로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존중은 약해졌다고 하였다. 사회에 만연한 성과주의에 대해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이를 스스로 성취한 것이라고 자부하고, 동료나 시민들에게 빚진 의무감은 덜 느끼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난 40여 년간 시장이 세계화되면서 성과주의로 인한 불평등은 더욱더 심해졌다. 모든 산업에서 소수의 슈퍼스타가 너무 많은 과실을 가져간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엄청난 뉴노멀(새로운 기준)을 가져올 것이다. 우선 경제적 득실보다 위생과 보건이 우선할 것이고, 사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부당하게 대우받았던 산업과 취약계층에 대한 보상도 새롭게 논의될 것이다. 뉴노멀은 과거 잘못된 것을 다시 조명하고 수정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더 평평한 세상이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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