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권의 글로벌 시각]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입력 2020-04-09 17:34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전 주핀란드 대사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언제 잦아들지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후를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은 대체로 세계가 더 닫히고 어려워질 수 있다는 예측이 많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우선은 평소에 몰랐거나 무시하고 지나갔던 문제들이 명백하게 들추어내진 측면이 있다. 각 나라의 보건체계에 대한 내성 시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북미, 유럽의 일부 선진국에 감염자와 희생자가 많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괜찮아 보이던 보건의료체계가 위기가 닥치자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선진국 가운데서도 미국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의 의료체계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의료보험제도 개혁에도 불구하고 아직 3000만 명 정도가 의료보험에 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7% 정도가 의료 관련 비용으로 쓰인다(한국은 약 7%). 그 많을 돈을 어떻게 쓰기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언론에 우리나라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여기저기서 조언도 구해오고 도움도 청해온다고 한다. 더 많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이웃 나라의 약점이나 어려움을 너무 드러내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우리에게는 아직 큰 고비가 오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우리가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코로나19의 유행 초기에 세계보건기구(WHO) 수장의 언행이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실제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없지 않았다. 최초 발병이 보고된 국가를 방문하면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좀 의아스러웠다. 앞날을 모르는 상황에서 찬사보다는 조언이나 지적을 더 많이 했어야 할 것 같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팬데믹(pandemic·대유행)’ 선언도 망설이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 같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진실과 투명성이 힘이자 능력이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대만과 싱가포르에서 피해가 적은 것을 보고 통제와 능률성을 강조하는 아시아적 방식이 그렇지 않은 서양의 방식에 비해 더 우수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선 코로나19의 유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런 말은 성급한 것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와 생각의 차이를 사회나 체제의 우열로 연결시키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유럽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중요시한다. 생명의 위험 앞에서도 존엄성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죽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누가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겠는가. 다만 그들의 문화와 생각이 그런 기조에 닿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는 문제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 결국 쓰기로 했지만 사람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매우 내키지 않는 일인 것이다.

끝으로 코로나19가 세계화의 퇴조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자 다른 나라들을 원망하고 지나친 개방성을 그 원인으로 돌리려는 생각들이 있었다. 서유럽의 솅겐 체제를 문제 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는 협력이 중요하다.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는데 국제사회가 힘을 모으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어느 한 나라가 이것을 개발했을 경우 그 결과가 최대한 빨리,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유가 있는 물건은 나누어 써야 한다. 지금은 마스크를 이야기하지만 앞으로 사태가 지속되면 결국 식량문제가 우리 앞에 닥칠 것이다. 이때에 국경을 닫으면 그야말로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열린 마음이 필요한 시기이다. 주름진 경제를 최단 시일 안에 복구시키기 위해서도 열려 있음은 굳건히 유지되어야 한다. 바이러스를 막자는 것이지 사람을 막자는 것이 아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