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2047달러로 2018년에 비해 4.1% 줄었다.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5.9% 올라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탓이다. GNI 감소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의 타격을 받은 2015년(-1.9%) 이후 4년 만이고, 감소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10.4%) 이래 가장 크다.
작년 돌발적 위기가 없었는데도 성장은 멈추고 소득이 쪼그라들면서 국민경제는 더 나빠졌다.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인 3년 차의 성적표다. 물론 대외여건이 엉망이었다. 글로벌 경기가 가라앉고 미·중 무역분쟁의 타격이 집중됐다. 수출을 떠받치는 반도체 경기도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건 핑계가 안 된다. 명목 GDP 증가율 1.1%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에서도 꼴찌 수준이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훨씬 큰 미국·일본·독일·영국 등도 2∼4%대 성장을 일궜다. 세계 경제가 좋아도 한국은 홀로 뒤처지고, 나쁠 때 다른 나라보다 더 후퇴했다.
우리 명목 GDP 성장률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5.5%에서 2018년 3.1%, 작년 1.1%로 곤두박질했다. 국민경제 부가가치의 원천인 수출과 소비, 투자가 급격히 하락한 결과로, 경기 또한 그만큼 악화했다. 이처럼 심각하게 고장난 경제를 뭘로 설명할 건가.
결국 경제정책의 역주행이 가장 큰 문제다. 근로자 임금을 더 주면 소비가 촉진되고 생산과 투자도 늘어난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모순이었다. 소득은 기업투자를 통한 생산 증대의 결과물이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소득주도성장론이 ‘마차가 말을 끄는’ 본말전도(本末顚倒)임을 지적해왔다. 그건 경제정책이 아니라 정치구호이자 복지이념으로, 결코 성장동력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우려한 대로 민간의 규율을 무시한 정부의 반(反)시장적 통제,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반기업 경제가 소득주도성장의 실제(實際)였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제로(0), 법인세 인상 등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비용만 높이면서 좋은 일자리를 줄였다. 부작용은 정부의 헬리콥터에서 돈 뿌리기식 보조금과 재정을 쏟아부은 공공일자리 만들기로 메워졌다. 정부는 또 공정경제의 이름으로 민간기업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침해하고, 국가가 경영에 개입하는 관치(官治)의 족쇄를 양산했다.
이러고서 어떻게 기업활력과 투자가 살아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건가. 다시 혁신성장의 기치를 들었지만, 그 또한 유체이탈의 구호였다. 선결조건은 규제와 노동시장 개혁인데, 규제혁파는 늘 말뿐이다. 최근 국회가 문 대통령이 ‘규제혁신 1호’로 내세웠던 인터넷은행법 개정은 무산시키고, 공유경제 혁신의 상징인 ‘타다’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모두 여당인 민주당이 주도했다. 노동개혁에 정부의 눈곱만 한 관심도 없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이 옳은 방향이라고 고집하면서 입맛에 맞는 몇 개 지표만 골라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계속 강변한다. 그러나 끝내 소득주도성장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4년 차인 올해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직격탄이다. 수출·내수·투자 모두 얼어붙어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지는 양상은 최악의 경기후퇴와 대량 실업(失業)까지 예고한다. 정부는 비상한 대응을 말하지만, 여전히 바꿀 생각이 없는 정책기조가 비상대책을 제약한다.
경제가 망가진 뒤 또 코로나19 사태를 탓할 건가? 정부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코로나19는 어떻게든 지나가겠지만, 소득주도성장의 신기루에 매달려 국민경제가 추락하고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나면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 기회마저 놓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