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바이러스 정치경제학

입력 2020-02-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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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회장(서울대 객원교수)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 지역에서 최초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기세가 심상치 않다. 코로나19를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전염병인 소위 ‘팬데믹(pandemic)’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중국 밖의 여러 나라에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WHO가 중국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감염 요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그들이 진원지인 우한에는 가보지도 못했다며 향후 발표될 결과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의 도시 봉쇄와 격리 조치에도 불구하고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어나고 감염자가 나타나지 않던 지역에서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어, 피해 규모가 과거 사스 바이러스를 넘어섰다.

특히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달함을 감안할 때 코로나19 사태가 주는 경제적 충격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큰 우리로서는 이 사태가 장기화하면 그만큼 경제적 타격이 다른 나라보다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와이어링 하니스 등 부품 공급을 중국에 있는 하청업체에 의존한 자동차 업계는 공장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 중 중국인 비중이 34.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감소한다면 여행과 호텔, 면세점 등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또한, 감염을 우려한 소비 활동 위축으로 도소매, 숙박, 음식점 등 서비스업의 타격도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던 우리 기업들에 생각지 못하던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그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금의 사태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대응도 점점 차별화되고 있다. 중국은 이번 사태를 잘 마무리해서 ‘신뢰받는 대국(大國)’의 이미지를 쌓고자 하지만 아직까지 역부족이다. WHO가 팬데믹에 준할 정도로 경고음을 울리면서도 중국 정부의 대응 조치를 신뢰하는 입장을 발표하자 서방의 언론들은 WHO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부 언론은 과거 소련의 패망이 1986년 발생했던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대한 소련 정부의 폐쇄적 대응이 낳은 결과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중국 정부의 불투명한 대응이 불러올 심각한 파장을 은연중 암시하기까지 한다. 일본 정부도 요코하마 항에 정박한 선박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다. 계속 늘어나는 환자 수로 인해 크루즈선인 ‘다이아몬드프린세스호’는 세균배양용기라는 오명까지 쓰기에 이르렀다.

코로나19 발생 원인과 확실한 치유법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우리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사망자와 2차, 3차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어 통일된 대응 방법을 찾기 어렵다. 그만큼 각국 정부로서도 국제사회 공조보다 자국 나름의 독자적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따라서 지금 각국 정부는 바이러스균 자체의 심각성을 크게 우려하면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시험대에 올라선 형국이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 집단 감염이 밝혀지고 사망자가 늘면서 소비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훨씬 하회하는 위기 상황을 염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범정부 차원의 위기 극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정부의 방역체계와 위기대응 역량을 문제 삼기 시작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예기치 않은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으나, 이 같은 경우에 뚜렷한 방안을 찾기 어렵다. 우선 자체적으로 방호벽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내부에 충분히 버틸 자본을 축적해 두었다면 그만큼 시간을 벌겠지만 경영 상황이 어려운 많은 기업들에는 그럴 여력이 없다. 부품을 중국에 의존하는 제조 기업들의 경우 조달원을 다른 지역으로 돌리거나 자체 생산으로 전환해 보려 하겠지만, 이 또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추가적 원가 상승의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위험을 외부화하기 위해서는 보험이 일반적이나 이러한 불확실성을 전가할 마땅한 상품을 찾을 수 없다. 결국 많은 한계기업들은 위험을 견디지 못해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막다른 지경에 몰리기 쉽다. 따라서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이미 적자 재정을 편성한 마당에 또다시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하기엔 부담이 있지만 지출항목의 조정을 포함한 특단의 대책이라도 검토해야 할 때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계속해서 이와 유사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급력이 더욱 커질 경우 지금처럼 세계가 국제적인 공조보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심화하는 국면에서, 개별 기업 차원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은 더욱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 사태가 마무리되면 정치권은 단기적 경기 대책보다 예기치 못한 국가 비상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 시스템을 보완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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