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78세 어머니의 은퇴

입력 2020-02-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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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테르텐 대표

우리말 중에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은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어머니’가 아닐까? 세월이 흐를수록, 남녀를 떠나 ‘어머니’라고 소리 내어 부를 때면, 그냥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아마도 우리 어머니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을 옆에서 지켜보며 은혜 입은 자식들이, 그 한 단어의 무게와 깊이에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일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다른 모든 이 땅의 어머니들처럼 영화 같은 삶을 사셨다. 의료시설이 낙후된 1942년, 평범하지 않은 울릉도에서 태어났는데,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낳다 돌아가셨다. 그런 이력 때문인지 가족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 강한 분이다. 시집온 뒤에는 갑작스럽게 병환을 얻은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 병간호에 딸 셋을 키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금세 털고 일어날 거로 생각해 시아버지인 나의 할아버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했는데, 그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자립심이 강했던 어머니는 분가해 직접 경제 활동에 뛰어들었다.

평생을 일했던 어머니는 2010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치킨집을 차렸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경제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철이 들어오기 전, 논밭일 때부터 살았던 곳은 어느덧 방배동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어머니 명의의 아파트 한 채가 있다. 그 아파트만 갖고도 편하게 여생을 보낼 방법이 있는데도 일을 하겠다고 하시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장사를 처음 하는 어머니의 하루하루는 좌충우돌을 넘어 참으로 고단해 보였다. 20대 아르바이트생들은 무책임하게도 연락 두절이 빈번했다. 30대 성인들 또한 인내력을 갖고 꾸준하게 일하는 사람을 좀처럼 구할 수가 없었다. 사장인 엄마는 70대, 주방 이모는 60대, 가게 관리를 하는 삼촌은 50대였다.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대치를 돌파하고 있지만, 우리 치킨집은 그렇게 중년의 이모와 삼촌들의 도움으로 10년간 운영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은퇴하겠다고 말씀하셨다. 2018년 가을쯤이었다. 어머니 나이 76세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관통하고 있던 경제 불황은 우리 집에도 들이닥쳐, 핵심 상권임에도 일 년이 넘도록 가게를 보러 오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작년 말 뜻하지 않던 인수 제안이 들어와 다행히 가게를 넘길 수 있었다. 2020년 1월 31일이 어머니의 은퇴 날이 되었다.

그런데 그날을 보름 남겨 놓고 받은 건강검진 결과 어머니 폐에 종양으로 의심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딸내미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이제 보름 뒤면 평생 하던 일을 정리하는데, 나는 가게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검사를 받고 싶다”였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인간에게 직업이란 뭘까? 78세 고령의 어머니에게 의사가 종양이 의심된다고 겁을 주는데도, 어머니는 평생 한 업(業)을 정리하고 검사를 받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하셨다.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어머니의 음성은 보통 때보다 밝았다. “영아야, 종양이 아니래. 괜찮대.” 종양이 아니란 결과보다도, 은퇴 시점에 들이닥친 불청객 앞에서 초연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나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끝까지 당신의 신념을 지키며 마무리하신 그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한다. 돈을 벌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회적 성장을 위해, 직업이란 것을 갖고, 일을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란 생각을, 평생 일하시고 78세에 은퇴하신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업하는 딸의 처진 어깨를 볼 때면 해 주셨던 말씀이 있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영아야! 엄마가 살아보니 돈을 번다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일이라 욕심 낸다고 벌리지는 않더라. 그러나 열심히 일하면 굶지는 않는다. 늘 정직하게 그리고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해라. 그러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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