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해치지않아①] '북극곰' 탈을 쓴 안재홍이 바라본 세상

입력 2020-0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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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고군분투 하는 변호사…"유쾌하지만 무겁게 주제 던지는 영화"

▲배우 안재홍.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 '해치지않아' 영화 내용이 나옵니다.

변호사 태수(안재홍 분)는 ‘동물원 동산파크를 살리라’는 특명을 받고 야심 차게 동산파크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거대 로펌 소속이지만, 태수에겐 ‘수습’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동물원 원장이 되어 동물원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히지만, 태수에겐 동아줄과 다름없는 미션이기도 하다. 로펌 대표가 내린 임무만 잘 수행하면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그를 사로잡는다. 태수는 씩씩하게 동물원으로 향한다. 동물원에 들어선 그는 동물들이 팔려나가는 현장을 목격한다. 어라, 동물원에 동물이 없다. 영화 ‘해치지않아’ 이야기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안재홍을 만났다. 영화는 훈(HUN)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안재홍에게 생계형 수습 변호사가 동산파크의 새 원장이 되어 북극곰 탈을 쓴다는 황당할 수도 있는 계획이 담긴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때 느낀 감정을 물었다.

“마냥 ‘헤헤헤’ 웃으면서 ‘우리가 한번 해보는 거 어때요? 해봐요’ 하면 이야기의 힘이 떨어질 거로 생각했어요. 태수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을 관통하는 인물이고, 이야기를 운반하는 역할로서 더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죠. 저는 영화를 재밌게 하려고 더 힘을 준다는 생각 말고 절박한 감정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지푸라기 잡는 심경으로 탈을 써야 했으니까요.”

안재홍은 ‘다시 동물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라는 말이 설득력과 현실성을 갖지 못하면, 영화의 결이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동산파크에 간 태수는 모험을 시작하지만 로펌에 있을 때보다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미션을 수행하고 난 태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느낀다. 안재홍은 관객들이 태수의 감정 변화를 지켜보며, 추후 태수의 선택을 더욱 궁금해 하길 바랐다.

영화 속 태수는 절실하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 안재홍도 그랬다.

“저한테도 멀리 있는 감정이 아니에요. 연기하고 싶어서 오디션 보러 가고 준비하고, 영화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프로필 돌렸던 기억들이 있어요. 오디션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요. 그 기억들을 떠올렸어요. 영화의 타이틀롤을 처음 맡은 저라는 사람도 동산파크에 들어가는 강태수와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눈에 힘주고 뭔가를 하려고 하기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줄거리는 황당해 보이지만, 동물 탈을 쓴 배우들이 등장하면 관객들은 깜짝 놀란다. 생각보다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 안재홍은 북극곰, 강소라는 사자, 김성오는 고릴라, 전여빈은 나무늘보 슈트를 입는다. 박영규는 안재홍과 같은 북극곰이다.

“동물 탈 무게가 10㎏ 정도 됐어요. 자연스럽게 곰의 발걸음이 나오더라고요. 한 동물당 3~4개월 정도 공을 들였다고 해요. 처음 본 건 고릴라 탈이었어요.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숨죽이고 고릴라 탈이 등장하는 걸 지켜봤는데, 보자마자 입 모아 말했죠. ‘말 되겠다’고요.”

▲배우 안재홍.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안재홍은 북극곰 방사장처럼 만든 부산의 세트장에서 200여 명의 보조 출연 연기자들을 앞에 두고 탈을 쓴 채 곰 연기를 했다. 실제로 우리 안에 갇힌 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시선이 되게 낯설었어요. 영화에서 박영규 선배 대사에도 나오죠. ‘꼭 한두 놈이 앉아서 계속 쳐다보는 게 감옥살이 하는 것 같더라고’. 이 대사가 영화의 메시지를 은연중에 띠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동물에 대한 시선이나 태도를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태수가 얼떨결에 동물원 원장으로 부임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메인 플롯’이라면, 북극곰 ‘까만코’와 동물원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동물권’은 이 영화의 ‘서브 플롯’이다.

“감독님이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한 번 생각해볼까요?’ 정도의 분위기로 메시지를 숨겨놓은 게 좋았어요. 영화를 재밌게 보고 집에 돌아가서도 감도는 느낌이 있죠. 유쾌하지만, 무겁게 주제를 던지는 영화예요.”

주연배우들의 러브라인도 없다. 그래서 안재홍은 더 좋았다. “러브라인이 있을 이유가 없는 영화고, 있어선 안 되는 영화예요. 저희 영화는 분명하게 할 말이 있고 분명하게 추구하는 재미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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