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어디갈래] 핀란드 '갬성' 찾아 1만 년 전으로

입력 2020-01-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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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전에 다양한 의자들이 진열돼 있다. 앉는 부분과 등받이가 90도로 이어진 의자의 원형(왼쪽)이 에어백 의자, 안락의자 등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김소희 기자 ksh@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흔히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라고 한다. 굳이 화려한 색깔을 넣지 않아도, 거창한 장식품이 더해지지 않아도, 단조로운 듯하지만 멋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디자인.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 떠오르는 설명이다.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실용적인데, 군더더기 없는 ‘갬성’ 말이다. 이처럼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간직한 디자인이 1만 년 전 핀란드인들의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다면 믿어지는가.

국립중앙박물관은 핀란드의 물질문화와 디자인의 가치를 탐구하는 특별전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000년’을 21일부터 내년 4월 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8년 10월부터 2019년 2월까지 개최된 핀란드국립박물관 특별전 ‘디자인의 만 년’전의 세계 첫 순회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북유럽의 역사ㆍ문화를 소재로 전시를 마련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핀란드 디자인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형태의 융ㆍ복합 전시로, 핀란드국립박물관과 함께 마련했다. 전시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한 공동 기획자 건축가 플로렌시아 콜롬보와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빌레 코코넨이 한국 전시의 재구성과 원고 작성 등에 많은 도움을 줬다.

이번에 소개되는 전시품은 고고학 유물에서부터 민속품, 현대 산업디자인 제품, 사진과 영상 등이 망라됐다.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 들어서면, 돌도끼와 노키아 휴대폰, 나무썰매와 현대스키, 곰의 뼈와 현대 디자인 의자가 나란히 놓여있다. 이색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조합은 인간과 물질, 그리고 사물과 기술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에 온 핀란드 자료는 140여 건이다. 여기에 한국 유물 20여 건을 더해 유라시아 대륙 서쪽과 동쪽 나라 문화를 비교하도록 했다. 핀란드 전시품에는 하얀색, 한국문화재에는 붉은색 스티커가 붙었다.

▲나뭇가지를 그대로 활용해서 만든 의자. 창조적 과정이란 인간이 자연과 환경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김소희 기자 ksh@

전시는 크게 6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1부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들다’는 인간과 물질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물질을 탐구하면서 더 다양한 지식을 얻었으며, 물질은 인간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인간의 생물학적, 문화적 진화는 기술 혁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은 재료에 대한 탐구를 통해 모든 감각을 활용하는 직관력을 키우게 됐다. 이 과정은 인간과 물질이 만나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2부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는 물질의 다양한 가치에 관해 다룬다. 여기에서는 인간도 물질의 일부였음을 일깨운다. 인간과 물질 사이의 관계는 끊임없는 연구와 발견, 그리고 착취를 동반해왔다. 물질의 가치는 시간과 문화에 따라 계속 진화해왔다. 그러나 어떤 물질은 시간적 거리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3부 ‘사물의 생태학’에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생 과정을 살펴본다. 생태계의 다양한 특성을 숭배하고 심오한 지식을 터득하면서, 인간은 하나의 공통된 물질문화와 기술전통, 그리고 독특한 식단을 갖게 됐다. 사냥과 채집, 사슴 방목, 경작은 새로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탄생한 생계 시스템이다. 생계 시스템과 관련한 다양한 물품들은 핀란드인의 정서뿐 아니라 핀란드적인 디자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관해 풍부한 관점을 제공한다.

4부 ‘원형에서 유형까지’에서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은 ‘원형’과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하는 ‘유형’의 속성을 제시한다. 최근에 등장한 다양한 제작 방식들 속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균형은 필수적이다. 여기에서는 뿌리 깊은 원형의 존재에 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들은 비교 제시된 다양한 전시품을 보며, 하나의 사물이 가진 원형과 거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유형들을 비교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5부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는 인간의 환경에 대한 이해를 신앙 체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과거에는 초자연적인 대상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이 다양한 상징체계와 주술, 제의(祭儀)로 표출됐다. 이에 비해 현대인들은 새로운 맥락에서 디지털 세계라는 새로운 신앙 체계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초자연과 탈자연의 이야기 속에서 제시될 것이다.

6부 ‘사물들의 네트워크’는 사물의 관계성에 대해 살펴본다. 사물은 격리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있으며, 특정한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기능한다. 예컨대 표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 쌓기와 겹침으로 만들어낸 사물의 응집성, 그리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고안들과 모듈성에 대해서 살펴본다.

한편 이번 한국의 특별전에서는 주요 전시 개념인 모듈성을 활용한 진열장을 직접 제작하여 설치함으로써 전시 개념을 입체적인 전시 공간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체험공간도 있다. 전시실 입구의 프롤로그 디지털 존에서는 마치 우주의 한 공간에서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듯한 흡입력 있는 영상이 제시된다. 또 원목으로 만든 사우나 공간은 핀란드의 자연 풍경을 함께 감상하는 독특한 휴게 공간으로 연출된다. 대형 오로라를 연출한 영상이나 블록 형태의 시벨리우스 오디오 부스 등도 연말연시 박물관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마련됐다.

▲우리나라(오른쪽)와 핀란드의 설피(雪皮:눈 신발)를 비교 전시한 모습. 김소희 기자 ksh@

엘리나 안틸라 핀란드국립박물관장은 “핀란드인들이 사물을 창조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과정은 핀란드의 자연환경 및 생태계와 밀접한 관련을 지녀왔다”며 “이번 전시는 매우 핀란드적인 특징을 선보이면서도 동시에 그 접근 방식은 보편적이고 세계적”이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5일까지 서울에서 전시한 뒤 국립김해박물관(4월 21일~8월 9일), 국립청주박물관(8월 25일~10월 4일) 순회전도 예정돼 있다. 관람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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