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대필ㆍ이름만 바꾼 후원 아동도 등장…못 믿을 사회복지기관?

입력 2019-12-2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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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아동복지기관에 매월 2만 원씩 후원했던 황미정(36ㆍ가명) 씨는 얼마 전 후원 아동이 보내온 편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섯 살 아이가 쓴 편지로 보기에는 글씨가 너무 반듯했고 사용한 단어도 지나치게 어른스러웠기 때문. 해당 복지기관에 이를 문의했지만, 정확한 해명을 들을 수 없었던 황 씨는 결국 3년가량 이어왔던 후원을 중단했다.

일부 NGO(비영리 시민단체)와 사회복지기관의 부도덕한 행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후원 아동의 편지를 복지기관 직원이 대신 쓰거나, 같은 아동을 이름만 바꿔 후원 리스트에 노출하는 일 등이 발견되면서 NGO나 복지기관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후원 아동의 편지 대필은 일부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다는 게 관련자들의 증언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해당 업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에겐 생소한 게 아니라는 것.

한 NGO에서 5년째 사회복지사로 근무한 김모 씨는 "후원 아동이 작성한 편지가 부실하거나 마감이 늦어지는 경우, 소속 사회복지사가 대신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업무상 불가피하게 벌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후원 아동의 편지는 장기 후원을 이끄는 효과적인 도구다. 후원 아동의 생활이나 건강 상태가 달라졌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다. 일부에서 대필까지 하면서 연말에 편지를 발송하는데 공 들이는 이유다.

대필 사실을 접한 후원자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사례로도 그간 받았던 편지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복지기관에 장기후원 중인 진영민(26) 씨는 "어떤 곳은 후원 아동이 쓴 편지에 인턴들을 시켜 그림을 그리게 한다고 들었다"면서 "투명성과 신뢰, 진정성이 없다면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의 구분도 모호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단체는 관련 사건이 2016년에 발생했고, 착오로 빚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한 NGO에서는 똑같은 해외 후원 아동의 이름만 바꿔 인적사항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후원을 끊은 이유'라며 해당 사례가 거론되기도 했다.

해당 단체는 단순 착오라고 해명했다. 이곳 관계자는 "빠진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했다. 고의가 아니라 직원의 실수로 발생한 일이고, 인지하자마자 수정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와 내년에 거쳐 시스템을 정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해당 후원자와 상당수 네티즌들은 "해외 아동의 경우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것을 악용한 것 아니냐"면서 해명을 믿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복지 관련기관이나 단체에서 발생하는 비리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아동구호단체 유니세프의 사무총장이 직원을 성희롱하고, 해외출장 시 항공사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단체에 후원하던 최모 씨는 "이 사건 이후 사회복지시설에 후원하지 않는다"면서 "내 돈이 어려운 아동이나 이웃이 아니라, 직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일부에서 불거진 논란이 사회복지기관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서울 광화문광장 '사랑의 온도탑'은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지난해 목표액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목표액 1%가 채워질 때마다 1도씩 오르는 이 탑은 지난해 이 무렵 34.5도를 기록했다. 지금은 34.1도. 전체 목표액은 4257억 원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 관계자는 "공동모금회는 원래 개인보다 기업 후원이 많은 곳"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개인 후원이 크게 준 것은 사실이다. 다만, 기업 후원 덕분에 목표액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입양 기관, 장애인 복지기관도 개인 후원이 줄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3년 이상 장기 후원자 비율도 전보다 낮아졌다고 말했다. 한 복지기관 관계자는 "개인 후원이 많이 줄어들었다"라면서 "복지사업에 필요한 모금액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에게 많이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시스템을 정비하는 동시에 개인 후원자를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복지기관 스스로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침하기도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후원 문화가 '선의'에 호소하는 경향이 너무 강했다면서 "이제는 고액 후원자를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고액 후원을 할 수 있는데도 소득이 노출될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다"면서 "부자들에 대한 색안경을 벗기는 동시에 공신력 있는 기관을 중심으로 고소득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서울 소재의 한 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내부 고발자가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복지계는 상당히 보수적"이라며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는 고위 간부나 후원금 사용이 발견되면 신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연루자는 업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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