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이어진 LG ‘장자 승계’ 전통

입력 2019-12-14 16:49수정 2019-12-1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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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연(米壽宴·88세)에 LG그룹 오너 일가가 참석한 모습.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앞줄 맨 왼쪽)과 구본준 전 LG그룹 부회장(뒷줄 왼쪽 두 번째부터), 구광모 LG 회장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14일 구자경 LG그룹 2대 회장이 별세하면서 LG그룹의 장자 승계 가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G그룹은 경영권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장자가 그룹 회장을 잇고, 다른 가족 일원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계열 분리로 독립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고(故) 구인회 창업회장은 1947년 현 LG화학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을, 1950년에는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를 설립하며 그룹의 기틀을 갖췄다.

1대 회장인 구 창업회장이 1969년 12월 별세한 뒤 구 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인 구자경 회장이 45세였던 1970년 회사를 물려받았다.

구 명예회장은 진주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재직하다가 1950년 락희화학에 들어와 20년간 현장에서 경영 수업을 받다가 2대 회장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1세기를 맞는 세대교체'를 선언하며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줬다. 구본무 회장은 50세에 LG그룹 회장이 됐다.

구본무 회장은 부회장 시절이던 1994년 고등학생 외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뒤로 그룹 승계를 위해 조카 구광모 현 회장을 양자로 들였다. 구광모 회장은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이다.

이처럼 조카를 양자로 입양할 정도로 LG가의 장자 승계 원칙은 공고하다. 특히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기존 경영에 관여했던 다른 가족 일원은 조용히 물러나거나 계열 독립을 택한다. 마찰 없는 그룹 승계를 위한 것이다.

실제 1969년 12월 구인회 창업회장이 작고한 직후 이듬해 1월 동생이자 창업멤버인 구철회 사장은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또 다른 창업멤버이자 셋째인 구정회 사장은 구자경 회장 취임 후 1년 간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조카 구 회장을 보필했다.

이후 구철회 사장의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에서 독립시킨 LIG그룹을 만들어 나갔다.

태회·평회·두회 형제 일가가 이끈 계열사와 동업 관계였던 허 씨 일가의 계열사는 각각 LS와 GS로 떨어져 나가면서 별다른 잡음 없이 계열 분리됐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95년 1월 럭키금성그룹 사명을 LG그룹으로 바꾸고 2월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을 물려줬을 때도 이런 전통이 이어졌다. 당시 LG반도체를 이끌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유통사업을 담당하던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등 구자경 명예회장의 두 형제는 곧바로 LG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조카인 구본무 회장에게 길을 열어줬다.

이후 LG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분류되던 LG상사의 최대주주였던 구자승 씨 일가는 패션 사업부문을 떼어내 LG패션(현 LF)으로 분가했고, 자학·자두·자극 형제 일가도 모두 계열 분리하거나 다른 사업을 차렸다.

구광모 4대 회장이 취임할 때도 비슷했다.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지난해 5월 장자 구 회장이 총수에 오른 뒤 구자경 명예회장의 셋째인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은 고문으로 물러나며 조카인 구광모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둘째이자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본능 씨와 넷째 본식 씨는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희성그룹 회장과 부회장으로 각각 재임하며 LG그룹 경영권에서 빠져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LG그룹의 장자 승계 전통이 다른 기업과 달리 갈등 없는 안정적 경영과 기업 문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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