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_인터뷰] “난데없이 애 낳으라고요? 개인 챙겨야 저출산정책 성공합니다”

입력 2019-10-10 06:00수정 2019-10-10 18:11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김혜영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이사장 인터뷰

▲김혜영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이사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예전의 가족은 너무 무거웠어요. 기능적으로 과부화된 상태인 거죠. 엄마는 왠지 모든 걸 희생해줄 것만 같고, 아빠는 섬세한 감정은 모르지만 나를 부양해줄 거라는 이미지 속에 갇혀 있잖아요. 슈퍼맨처럼 엄마 아빠가 미화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남자와 여자를 놓쳤어요. 2030세대는 나 자체로 봐주길 원하지,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김혜영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이사장에게도 저출산 문제는 숙제다. 그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여성가족부ㆍ행정안전부 평가위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사회에서 가족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지켜봤다. 아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96년 가족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20년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가족에만 몰두한 셈이다.

지난해 2월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고민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김 이사장은 “연구자로서 가족 정책이 한계 있다는 건 잘 알았지만, 이 중요한 정책이 왜 우리가 생각한 만큼 진행되지 못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라며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아지자 사람들은 IMF만 이야기했다. 하지만 저는 이미 한국 가족이 내적으로 약화해있다고 생각했다. 2003년 ‘건강가정기본법(건가법)’이 제정되면서 2005년 여성가족부가 탄생했는데, 10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대수준과 어긋나 있지 않나”라고 했다.

노동시장을 공부하던 그는 1991년 12월 결혼을 하고, 1994년 가족사회학으로 학위 주제를 바꿨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치관의 충돌, 세대 간의 충돌을 봤어요. 우리는 가족 안에서 일상적인 투쟁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서울 사람인데, 남편은 지역 출신이에요. 저는 80년대 학번이지만 남편은 70년대 학번이죠. 저는 서태지를 말하는데 남편은 이해하지 못해요. 저는 개신교, 남편은 유교적 문화에서 자랐습니다. 작은 문화적 충돌이 계속됐죠. 그런데 한국은 가족을 아름답게만 묘사하잖아요.”

세상은 결혼을 미화하고, 결혼과 동시에 삶이 아름다워진다고만 말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용트림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김 이사장은 가족이야말로 미시와 거시가 만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사회가 변하고 시장이 변하는데 가족만 영원한 사랑이 확인되는 장소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여성가족부 안에서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가족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맥을 같이한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견해를 물은 것이다. 그는 “지금은 한부모나 아이돌봄 관련 서비스가 많아지면서 가족에 대한 지원이 많아져서 보건복지부랑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 같다”라며 “여성가족부 탄생 배경과 과거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면, 맥이 통한다. 지나치게 성불평등한 시각이 한국가족의 특징이었다. 여성가족부는 거대하고 협상력이 큰 부처는 아니지만, 젠더 문제, 세대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고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 일문일답.

- 노동시장을 공부하다 가족으로 공부 방향을 바꾸게 됐고, ‘가족전문가’가 되셨다.

“서구의 역사에서는 근대가 열리면서 근대적 인간이 출현하고 근대적 개인이 중심이 됐다. 남녀 관계도 언제든 해체될 수 있고, 결혼이라는 계약을 맺으며, 동기는 달라도 그 계약이 끝나면 결혼관계가 해체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근대가 만들어지면서 가족을 동원했다. 한국은 자꾸 가족을 아름답다고만 말한다. 1980~90년대 드라마를 보면 ‘확대가족’ 얘기가 많다. 드라마 ‘육남매’를 보면, 어려운 가정에서도 가족을 유지하는 엄마의 희생과 현실이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나. 가족이라는 건 개인도 행복해야 하고 개인과 개인의 결합으로서 가족도 행복해야 하는데, 가족이 제대로서 온전하다고 해서 개인이 행복한 건 아니다. 그런 질문을 했다.”

▲김혜영 이사장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가족기관으로서 가족서비스 사업을 통해 사회에 대한 관심, 공동체에 대한 허신, 늦게가는 사람을 아낌없이 챙길 수 있는 여유, 인간다움을 챙기는 정책으로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가족정책이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2000년 초에 여성부에서 알고 지낸 관료들이 가족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을 때 쉽게 답을 못하겠더라. 가족 정책이 무엇인가. 보편적 사회정책이 잘 되면, 가족 정책이 마련되는 것인가. 그럼 가족은 무엇인가. 돌봄이라는 게 들어오면 사회복지제도와 가족정책은 구분이 가능한 것인가.

주택, 조세 나아가 사회 정책의 합이 가족정책이다. 정책으로서 가족에 접근할 때 기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고, 여성가족부는 유자녀 가족, 한부모, 1인가족, 조손가족 등으로 방향성을 나눠서 가고 있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족되는 것인가. 지금은 무엇이 가족이냐고 물으면 말할 수 없다. 반려동물, 반려식물도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획일적으로 출산한 자녀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양성평등적으로 도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 가족을 구분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그렇다. 꼭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만 가족이 아니다. 다만, 혼자서는 살기 힘든 세상이다. 신자유주의, 거대한 시장의 물결에서 혼자서 싸울 순 없다. 누군가와 유대하고 동반해야 한다. 어떤 삶을 살든 간에 개인의 선택이다. 누구든 끝까지 80~90년을 혼자 살아간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돌봄이 필요할 경우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처럼(like family) 봐줬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가족을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부양하고 평생 돌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예전엔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오래 살아봐야 40년이었지만, 이젠 30세에 결혼해 60년 동안 함께 살아야 한다. 사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신체적으로 자유로움을 맘껏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모님이 날 키워주고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돌봐줘야 하는, 돌봄의 맞교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부모를 20~30년간 병간호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세대 간 교환부터 깨져버렸다.”

- 자녀가 부모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부모도 자녀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 서로가 부담됐다.

“서로가 불합리해지는 거다. 예전엔 대학만 보내도 잘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대학이 아니라 대학원까지 보내도 일자리 잡기가 어렵다. 학술적으로는 생애주기 자체가 탈맥락적, 탈표준화됐다고 말하는데, 탈표준화된 생애주기를 갖는 개인들이 누가 누구를 온전하게 돌보겠나. 우리가 알고 있던 가족은 다 사라졌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가 탄생했다. 새로운 유대관계, 즉 공동체는 필요한데,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은 유자녀 가족에 머물러 있다.

정부정책에 대한 고민도 여기에 있다.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고, 형태별 어려움에 따라 지원을 발 빠르게 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현실을 정책으로 담는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정책은 보편주의에 입각한다. 가족은 관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누군가와 유대해서 고독함, 외로움, 생을 살아가는 이유를 주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서 아이를 낳고 살지 않아도 가족이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 혹은 이웃이 가족이 될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게 가족정책이어야 한다.”

▲김 이사장은 젊은 세대에게 '저출산'이나 '결혼'이 아닌 '유대'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기존의 가족정책은 수용하는 폭이 좁았던 것 같다.

“아프고 힘들고 무능해지면 가족이 돌봐줘야 하는데, 젊은 세대들은 그런 가족을 구성하지 못한다. 돌싱도 마찬가지다. 지역 공동체에서 돌봄을 나눠야 한다. 기존의 가족은 너무 무거웠다. 기능적 과부하 상태였다. 사람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다. 국가나 사회가 합의를 통해 채워줘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누구랑 연대해야 하는가. 지금의 가족정책은 형태적으로 다양화된 가족을 수용하고, 가족이 못했던 기능을 일부 채워주는 것이지만, 미래의 가족정책은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 '워라밸'이 강조되는 시대다. 출산율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2030세대에게 기존의 가족 형태를 강조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가족정책은 기능적으로 부족한 이들에게 사회적 지원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한다. 소외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이 유적존재로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가족정책이다. 여기서 가족은 꼭 형태적인 가족이 아니다. 가족을 이성애적 결혼, 자녀 낳는 것으로 여전히 규정하니 오해가 생긴다. 인간다움을 가질 수 있는 영역으로 생각하면, 가족에 대한 오해가 풀린다. 부부가 서로를 닮은 아이를 가지거나,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대한 욕망이 있어서 입양을 통해 아이를 데려올 수도 있다. 그들의 마음을 귀하게 여겨서 부담을 빼줘야 한다. 너무나 과부화된 건 지역, 이웃, 사회, 국가가 해주면서 유적존재로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저출산 정책도 성공할 수 있다. 난데없이 결혼해서 애 낳으라는 식으로 기성세대의 가치를 강요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 취임 20개월을 맞았다. 고민은 무엇인가.

“여성가족부는 정책을 설계하고 이론에 집중한다.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진흥원은 변하는 현실에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현장을 보는 거다. 출퇴근을 하며 300명의 직원들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이들이 일터에서 충분히 대접 받고, 즐겁게 일하고 집에 가야 가정에서 품을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가장 핵심이 되는 역량을 갖추게 되는, 한창 바쁜 나이에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균형을 가졌으면 한다.”

- ‘저출생’ 문제가 맞는 말인가, ‘저출산’ 문제가 맞는 말인가.

“저출생이라고 했을 때는 생명의 귀함,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지 않는 것, 엄마와 아빠의 결합 외에도 태어난 아이의 힘 등이 담긴다. 여성을 생각하거나 새로운 생명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면 ‘출생’이라는 표현이 가치적으로 우월하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에겐 ‘저출산’이 더 익숙할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이라고 써도 틀리지 않다.”

-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안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있다. 지난해 9월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을 시행하면서 양육비 지급과 관련 범위를 늘렸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의 성장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양육비 지급이 전부는 아니다. 양육비를 못주는 사람은 부모가 아닌가. 우리는 ‘양육비 이행은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부모는 성인으로서 계약관계가 해체하면 떨어지지만, 아이들에겐 현존하는 존재로서 양쪽의 보살핌과 사랑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부모 역할을 해야 한다. 언제 적절하게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배우자간 논의가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우리 기관은 양육비를 대신 받아주는 대행기관으로만 생각된다. 양육비를 주려고 노력하면서 아이를 보살피고 후원해주고 지지하라는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양육비 지급 범위도 더 확대되어야 한다. 아이를 중심으로 부모가 책임을 다하고, 부모가 없으면 지역과 국가가 하는 식으로 이중삼중 보호막이 되도록 서비스가 개발돼야 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