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법률-상속] 가족들을 버리고 집 나간 아버지가 이제 와서 부양료를 달라는데

입력 2019-10-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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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아버지는 A씨가 어릴 때 가족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A씨의 어머니는 혼자 온갖 고생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A씨의 가족들은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소식도 모르고 살았고, A씨는 어느덧 성인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니 부양료를 달라고 한다. A씨는 평생 자식들을 키우는데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가 이제 와서 부양료를 달라고 하니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이처럼 자식을 키우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부모도 자식에게 부양을 요구할 수 있을까. A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평생 아버지로서 역할을 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단지 자신을 낳은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부양료를 지급해야 한다면 너무나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법에 따르면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A씨는 아버지에게 부양료를 지급해야 한다. 심지어 아버지가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살면서 아이까지 낳았고, 다른 여자와 살면서 본처의 자식에게 부양료 지급을 청구한 사안에서도 우리 판례는 부양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최근 이러한 부양료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도 많이 늘어서,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만 250건이 넘는 부양료 청구 소송이 접수됐다고 한다.

이처럼 부모로서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도 자식이 부양할 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문제와 더불어 이런 부모도 상속권이 있는지도 논쟁거리다. 이런 경우는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 보험금이나 배상금을 받게 되는 경우에 많이 문제된다. 얼마 전 충남의 한 고속도로에서 조현병을 앓던 환자가 고속도로를 역주행하여 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고로 마주오던 차량의 운전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 피해자는 곧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여서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이 피해자의 친모가 30년 만에 나타나 자신이 피해자에게 나온 보험금을 갖겠다고 해서 문제가 됐다. 이 피해자의 어머니는 피해자가 1살 때 이혼을 하고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5살 때 사망을 해서 피해자의 상속인은 어머니뿐이었다. 이후 이 피해자는 고모의 집에서 자랐는데, 피해자의 사촌언니가 피해자 어머니의 이러한 행동에 격분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했다. 이 일뿐만 아니라 과거 천안함 사건, 경주 리조트 붕괴 사건 등이 있었을 때도 자식을 양육하지 않은 부모가 나타나 상속인이라는 이유로 보험금 등을 요구해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식을 키우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부모라도 상속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양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법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기도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양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기준을 정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양육을 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법을 만들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와 반대로 부모를 제대로 부양하지 않은 자식에게 상속권을 인정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현재 민법에 따르면 불효자라도 상속을 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불효자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기도 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다만 필자는 어느 정도 불효를 해야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을 것인지 기준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으로 법을 만드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내용으로 법을 만들면 상속과 관련한 분쟁만 더 많아질 것이다.

결국 현재 법에 따르면 이러한 억울한 경우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데,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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