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브로커의 덫] “수임료 일시불” 불법대출 권유...대놓고 ‘서류 조작’

입력 2019-09-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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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등 명의 빌려 불법 활동...24% 고리대출도 유도

하이에나 무리가 서울 서초동 법원 골목을 배회한다. ‘회생 브로커’라는 이름의 하이에나 무리다.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신용불량자’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당장 돈이 궁한 변호사·법무사는 브로커와 한배를 탄 지 오래다. 수사기관도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단속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는 상황이다. ‘빚의 늪’에 빠진 신불자들은 서초동 하이에나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회생·파산업계에서 불법 브로커는 ‘관행’으로 인식돼 왔다.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의 업계 관계자들이 여전히 수두룩하다. 이들은 브로커와 계약한 의뢰자들이 무난하게 회생을 졸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강변한다. 실제로 브로커에 걸린 신용불량자들이 모두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무탈하게 면책까지 받아내 신용등급을 회복하는 경우도 꽤 있는 게 사실이다. 한 회생 업계 관계자는 “정식 사무소 직원과 브로커는 한끗 차이”라며 “업계 특성상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지 않고, 문제가 불거진다고 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브로커를 마다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나 법무사가 자격증이 없는 사람에게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부터 명백한 불법이다. 브로커들의 활동 자체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다. ‘변호사법’ 제34조에 따르면 변호사가 아닌 사람은 변호사를 고용해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해서는 안 된다. 변호사가 아닌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해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도 안 된다.

◇“수임료 분납 안 돼”… ‘최고금리’ 불법 대출로 유도 = 더구나 브로커들은 활동 자체가 법망 밖에 있는 만큼, 변호사·법무사들이나 정식 사무소 직원들과 달리 불법행위를 하는 데 거칠 것이 없다. 실제로 브로커를 끼고 회생절차에 들어간 신불자들은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보는 경우가 다반사다.

업계 관계자들은 브로커의 가장 크고 실질적인 폐해로 하나같이 ‘수임료 대부업체’ 연계를 꼽는다. 한마디로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데 따른 비용을 대부업체한테 대출받아 내라는 것이다. 회생이나 파산 신청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게는 300만 원 가까이 되는 수임료를 한 번에 낼 여력이 없다. 정식 사무소나 법무법인 같은 경우는 이들에게 수임료를 분납할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3~5개월 정도의 기한을 준다. 당연히 이자는 붙지 않는다.

하지만 브로커들은 이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브로커들은 수임료를 한 번에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대출을 유도한다. “필요하면 대부업체를 소개해줄 테니 대출이라도 받아라”는 식이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불법 대부업체들이 개입한다. 법정 최고금리인 24%를 적용해 6개월 정도 만기로 대출을 해준다. 불법 금융이기 때문에 계약서도 쓰지 않는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가끔 대부업체 사람이 수임료 대출을 이어주면 건당 10만 원 정도씩 수수료를 주겠다는 제안을 해온다. 전화로 오기도 하고 가끔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서초동 사무소 10곳 중 3~4곳 정도가 대부업 연계대출을 유도한다고 보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 마케팅 관계자는 “몇 년 전 대부업 연계대출로 브로커들이 대대적으로 적발됐지만 여전히 성행한다”며 “최근에는 처음에는 분납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한 뒤 나중에 대출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다양해졌다”고 귀띔했다.

◇“변제율 낮춰줄게” 서류 조작까지 = 회생 신청자의 서류를 조작하는 등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는 브로커들도 있다. 의뢰인들도 불법행위라는 걸 인지는 하지만 “회생인가를 받게 해주겠다”라든가 “변제율을 낮춰주겠다”는 브로커의 꼬임에 넘어가곤 한다. 일례로 부양가족이 없는 의뢰자에게 “부양가족을 가짜로 만들어줄 테니 100만 원을 더 달라”는 식으로 제안을 한다.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최저생계비 기준이 올라가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광주에서는 한 브로커 사무소가 이런 식의 영업을 하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2017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변호사 자격 없이 339건의 개인회생 사건을 맡아 처리했다. 1년여 동안 의뢰인에게 받은 수임료는 총 6억9000만 원 규모다. 특히 이들은 개인회생 과정에서 의뢰인의 재직증명서나 통장 거래내역,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변조한 혐의도 받았다. 상담 중에 “소득이나 재산을 줄여 개인회생을 할 수 있다”며 의뢰인을 유인한 것이다.

광주지방법원은 17일 브로커 조직원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사무장 격인 한 명은 징역 2년 6월에 추징금 3억1247만5380원을, 같은 혐의로 기소된 나머지 사무소 직원 두 명은 각각 징역 1년 6월, 징역 1년 6월에 추징금 3억2577만6000원을 선고받았다.

브로커 세계를 잘 아는 한 회생·파산 업계 관계자는 “이 사건 같은 경우 한 사무소에서만 1년간 339건, 6억9000만 원 규모의 사건을 맡은 것인데, 이 조직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 중에 일부일 뿐”이라며 “브로커들은 추징금 내고 감옥에서 살다 나와 다시 일하면 그만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들만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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