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재우 작가 "엄마의 뇌와 말하며 '나'를 돌아봤습니다"

입력 2019-09-26 06:00수정 2019-09-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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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차 다큐멘터리 작가가 쓴 성찰 에세이 '엄마의 뇌에 말을 걸다'

▲이재우 작가가 23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뇌는 나 자신이더라고요. 평생 경험하고 배운 것들이 쌓여서 제가 되는 거예요. 흔히 우리가 스트레스받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그것들이 뇌의 건강과 직결돼 있어서라는 걸 엄마를 통해서 알았어요. 즐거움, 행복함을 많이 느끼세요. 운동도 많이 하시고, 감정 관리도 잘하시고. 참, 잠도 충분히 자야 하고요."

나이 듦, 집착, 거부, 분노, 불면, 우울, 기억, 정서, 혼돈, 성격…. 이재우 작가(54)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보며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이렇게 열 가지로 추렸다. 30년 차 다큐멘터리 작가도 엄마의 치매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엄마 왜 그래'라는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럴수록 엄마는 자신을 경계하는 것만 같았다. '엄마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면 엄마는 입을 다물었으니까.

점잖았던 엄마는 요양보호사만 보면 화를 내고, 화장실 휴지에 집착하고, 자식들을 못 알아봤다. 이 작가는 "엄마는 치매 증상이 '수직하강' 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연로한 상태에서 시작된 치매는 엄마를 빠르게 바꿔놨다. "엄마, 나 재우야. 막내딸 왔어요." 라고 말해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 작가는 "계속 목소리로 말해야 했다"라며 "청각적인 정보가 들어오니, 시각에선 몰랐어도 청각 정보로 해마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전두엽에서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거 같다"라고 했다. 수없이 반복하자 엄마는 말했다. "내 딸 재우야."

"많은 부분의 기억이 손실됐기 때문에 결혼은 했는지, 애가 몇 살인지 출산 전에 엄마가 어떻게 해줬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셨어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알아봐 주시면 감동적이더라고요. 지치고 힘들다가도 힘을 얻게 되죠. '우리 엄마, 아직은 괜찮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2017년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에 들어가게 됐다. 이 작가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던 거 같다"고 했다. 수업 중 전두엽이 손상되면 '무의욕, 무관심, 무감동' 증상이 나타난다는 말을 들었는데, 치매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엄마의 증상을 볼 때마다 울며불며 관찰 기록을 썼다. 객관화하는 작업을 위해 10여 명의 치매 부모를 둔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기록과 이 작가가 느낀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다음은 이 작가와 일문일답.

-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같은 일을 겪는 보호자들과 치매, 요양 쪽에서 일하는 이들이 읽기를 바랐어요. 뇌과학이 어떻게 치매 증세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10명의 사례자를 만나 인터뷰 했는데, 그때그때가 너무 급해서 저처럼 궁금증을 갖고 일일이 찾아볼 여력이 없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다큐멘터리 작가를 하면서 어떻게 정보에 접근해야 할지 조금은 알 수 있어서 찾아볼 수 있었죠. 취재 과정에서 치매센터에서 발간하는 치매 수기집도 받아서 봤어요. 제가 취재하는 사례 외에도 공통적인 증세를 아는 데 필요한 과정이었요."

- 처음 엄마가 치매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2016년 지역구 치매센터에서 '경도인지장애' 결과를 받았어요. 하지만 일상생활은 잘하셨어요. 다만 자식들 네 명 준다고 지난주에 사서 나눠준 것들을 이번 주에 또 사서 나눠주시긴 했어요. 하지만, 일상생활은 잘하셔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죠.

어느 날 엄마가 심부정맥을 앓고 계시고, 신경과 약을 먹고 있어서 올케가 연대 세브란스로 정기 검진을 같이 다녔어요. 신경과 진료 후 엄마가 먼저 화장실 다녀오고, 그다음 올케가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사이 엄마가 없어진 거죠. 난리가 났죠. 올케가 침착하게 상황실 가서 CCTV를 봤는데, 병원 정문을 나서고 있는 엄마를 발견한 거예요. 그때 처음 실감했어요. CCTV 속 엄마의 표정은 너무나도 황망했어요.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작가는 엄마의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치매 노모를 돌보는 자녀들을 직접 취재하기도 했다. 그는 "자극과 정서적 교감이 필요하다"며 "손을 많이 만져주고 귀에 대고 많이 이야기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제도가 있나요?

"요양병원에서 요양사들을 만나면서 많은 감정을 느꼈어요. 우리나라 요양사 80% 이상이 조선족이에요. 우리말을 안다는 이유로 간병인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로 20년 넘게 일하고 있죠. 그들은 몸으로 부딪혀서 배워요. 욕창 관리, 씻기는 문제, 심지어 석션까지도요.

일반 수술 환자 뒷바라지와 치매 환자는 완전히 달라요. 치매환자는 정서적 교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선족이 같은 한국어를 해도 발음과 억양이 조금 다르잖아요. 많은 노인들은 퇴행성 난청을 앓고 있어요. 저희가 귀에 갖다 대고 크게 말해도 못 알아듣는데, 외국인이 말하면 더욱 못 알아듣는 거죠. 치매환자는 표정에도 민감해요. 자신에게 따뜻한 사람인지 무의식적으로 아는데,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하니 충돌이 생기는 거죠."

- 뇌와 정서, 뇌와 성격, 뇌와 인지, 뇌와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엄마의 뇌'를 통해 하셨습니다.

"우리가 치매 환자의 뇌를 들여다본다는 건 우리의 정상적인 뇌 활동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요. '5080 모녀 세대'의 관계를 들여다봤어요. 갱년기를 겪는 50대 딸도 호르몬 변화를 느껴요. 불면, 홍조, 땀 그리고 근골격계까지 이상을 느끼죠. 하지만 80대 노모는 치매를 앓고 있어요. 고통 속에서 노모를 보는 일이 쉽지 않을 겁니다.

2017년은 가장 힘든 해였던 거 같아요. 엄마의 bpsd(정신행동증)는 가족을 놀라게 했거든요. 경악하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못해 분노했어요. 그다음 슬퍼했죠. 공부를 해도 대처 방법에서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었어요. 그 똑똑했던 엄마가 100번을 얘기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휴지에 집착하거나 특정 행복을 반복하니까요."

- 최근 치매 국가책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됐습니다. 이 제도는 치매 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백세시대를 사는 현대인 중에 노화를 제대로 공부하고 노년기를 맞이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80대 노인 10명 중 2명 이상이 치매 환자라고 합니다. 노인 대표 질환인 만큼 부양가족의 연령도 중장년층일 수밖에 없고, 이들의 신체적·정신적인 고통은 국가적 문제가 됐어요. 더이상은 개인과 가족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거죠. 사회적,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 책을 쓰면서 내린 결론이 있나요?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가족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엄마랑 작별하기 전 잊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어요. 엄마의 정신이상 행동을 인정해주기, 감정 파국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기, 인격적 존재로 인정해주기. 소리도 지르고 언성도 올라갈 거예요. 처음엔 쉽지 않죠. 하지만 제 일그러진 표정을 보면 엄마는 더욱 분노해요. 편도체에서 화가 났어도 전두엽에서 조절해줘야 하는데, 종합적인 사고 판단이 안 되니까요. '엄마 안돼'라는 말보다 기다려야 해요. 많이 안아주고 손 잡아주세요. 촉각은 오래오래 남는다고 해요. 귀에 대고 많이 얘기도 해주세요. 자극과 정서적 교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형제 자매와 엄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세요. 서로 다독이며 공감해주고 응원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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