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세계, 지역농협] 김재수 전 장관 “갑질·적폐 방지 위해 조합장 연임 제한”

입력 2019-08-30 05:00수정 2019-09-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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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 농가보다 직원을 위한 조직으로 변질"…"선거제, 기존 조합장에 너무 유리"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상연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김재수 전 농림식품부 장관이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의 관계에 대해 이같이 정리했다. 100만 농가와 지역농협 뒤에서 보이지 않게 움직여야 할 농협중앙회가 10만 직원을 위한 조직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최근 ‘이투데이’가 연속 보도한 지역농협과 조합장의 부정·부패 문제도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김 전 장관은 1977년 제 21회 행정고시 합격을 시작으로 2017년 7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임기를 마치기까지 40년 동안 농업 개혁과 발전에 매진했다. 수십 년 동안 그가 현장에서 깨달은 농협 개혁의 대전제는 농협중앙회 서비스의 최종 수요자가 농민이라는 것이다. 수요자가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농협중앙회는 존재 의의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김 전 장관은 29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이 몸 담았던 농림축산식품부의 행정적 한계와 농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농업 개혁에 있어서는 여야가 없고, 보수와 진보도 없다는 ‘농업맨’으로서 그의 신념이 인터뷰 내내 진솔하게 드러났다.

-지역농협과 조합장의 문제는 어디서 비롯되나

“우선 선거제도가 기존 조합장에게 유리한 구조다. 선거도 깜깜이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합장을 뽑기가 어렵다. ‘이투데이’ 보도처럼 가짜 조합원 문제도 그렇고, 전국의 조합 상당수가 수사 대상에 올라와 있다. 그만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선거제를 손보면 되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일각에선 선거제를 손보자는 얘기가 많다. 선거제를 고친다고 해도 조합장 갑질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직선제를 강제한다고 해도 심해질 수도 있다. 애초 농협 개혁이 시작될 때 조합장의 무소불위 견제에 비중을 두지 못했다. 조합장이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거나 했어야 했는데, 개혁이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일례로 중앙회장의 경우 자신이 저리로 대출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않나.”

-중앙회장을 직선제로 뽑자는 얘기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인가

“농민이 직접 선거로 뽑자는 것은 ‘민주적인’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얘기다. 그렇지만 되묻고 싶다. 현 시점에서 중앙회장을 직선제로 뽑으면 그의 권력이 줄어드는가? 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선제로 뽑으면 (중앙회장을) 장관도 통제하기 어렵고, 조합장 역시도 통제하기 어렵다. 농민들과 면담도 안 할 거다. 중요한 건 현재 조합이 요구하는 게 뭐냐는 거다. 선거제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 조합장 권력은 어떻게 견제할 수 있나

“앞서 말했던 얘기와 연결된다. 선거제가 기존 조합장에게 유리한 건 선거제 자체의 잘못보다는 ‘투명성’이 없어서다. 공개적으로 선거 운동도 못 하는 구조에다가, 2주 전에 시작하는데 신규 진입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일부 조합의 문제는 일정 부분의 예수금이 쌓이면 감사를 넣고,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으로 보완해야 한다. 지금은 전무나 상무나 연봉도 1억 원이 넘고 시골에선 ‘한자리’다. 그래서 과거에 통폐합을 시도하려고 했던 거다. 작은 시골에도 조합이 널렸다. 이런 것들을 공익화하는 방향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반발이 상당해서 실패했다. 조합장은 물론 이사, 상무 자리 다 없어진다. 농협 개혁은 과거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농협조합장이 농협중앙회 감사를 겸임하기도 한다. 여기엔 문제가 없나

“조합장이 농협중앙회 감사를 겸임하는 경우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이렇게 중앙회 조직과 지역농협 간 유착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는 미리 막아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외부 인사를 감사로 채용하는 것이 옳다. 외부에서 인사를 데려오는 것이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역농협의 문제에 대해 농협중앙회의 책임은 없는지

“지역농협이 제대로 운영되는 것의 핵심은 결국 ‘농민’이다. 조합장의 권력 견제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농협중앙회는 조직이 너무 비대해졌다. 농민보다는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중앙회가 공동 구매하는 농약이나 비료 같은 것들이 민간에서 사는 것보다 더 비싸다. 그런데도 농민들은 중앙회가 판매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회가 현재 너무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 사업을 민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회는 중앙회가 꼭 해야 하는 사업, 교육과 같은 이익은 남지 않지만 필요한 사업만 남겨두고 민영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은 농협중앙회 밑에 관련 자회사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하나의 권력체로 운영되고 있다.”

-감사 권한이 있는 농림부의 책임이 크다고도 지적하는데

“사람이 없다. 농림부는 감사 인원이 10명 정도 되는데 감사를 해야 하는 기관이 농협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농촌진흥청을 비롯해 관련 기관들이 너무 많다. 항상 인원 부족에 시달렸다. 지금 지역농협은 상당히 커졌고 사실상 농림부 손에서 벗어났다고 보는 게 맞는다.”

-조합장이 국회 농해수위 위원들과 친해서 견제가 안 된다는 말도 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오겠나. 현장에 가면 농민들은 다 농협이 잘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농해수위 위원들만 농협이 잘 하고 있다고 박수친다. 심지어 농자재를 민간보다 더 비싸게 공급하고 있는데도 칭찬만 한다. 농해수위 위원들이 조합장이 갖고 있는 표를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인들이 사적인 이해관계에 얽혀서는 농민들이 중앙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조합장 연임 제한이 구체적 대안이 될까

“어떤 조직이든 임기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효율성보다는 부작용이 더 크게 발생한다. 하지만, 조합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연임을 허용할 수도, 금지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특정 조합이 추구하는 최대 가치가 적폐 방지, 갑질 금지라면 연임 제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운영 방식은 상관없이 무조건 성과를 우선시하는 조합이라면 굳이 연임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 지역 특수성에 따라 달라지는 사안이라고 본다.”

-농림부에서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밖에서 바라본 농협중앙회와 농림부는 어떤가.

“많이 새로웠다. 정부에서는 공무원 편의 위주의 행정, 농협중앙회에서는 직원 편의 위주의 행정이 이뤄지는 것이 보였다. 진짜 수요자인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어떤 의원이 농림부 한 해 예산이 14조 원 되는데, 이를 250만 농민에게 직접 나눠줘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 직접 나가보니까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보면 유통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추가돼서 농민들 부담이 너무 커진다. 농민의 입장에서 유통의 중간 과정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이제까지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 최종 수요자는 농민이고 지역조합을 통해서 농민을 돕는 것, 이게 농협 개혁의 핵심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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