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트럼프가 취임한 2017년 이전까지 세계 모든 주요 기업은, 급속하게 진행된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혁명의 수혜 속에 매우 낮은 수준의 무역장벽과 저렴한 국제거래비용에 힘입어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 빠르게 편입돼왔다. 또 다국적 기업들은 주요 생산공정별로 가장 효율적인 나라에 각각의 생산공정을 분산 배치해 기업의 생산공정이 전 세계적으로 나뉘어 이루어지는 분절화(fragmentation)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그 공정들이 서로 연결되는 국제적 분업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결과, 모든 산업에 걸쳐 생산비용은 빠르게 감소하고, 단순 제조공정은 대부분 미국과 선진국을 벗어나 중국이나 베트남, 멕시코 등 신흥제조국으로 이전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 경제는 단순 제조업 등 비교열위 산업에서의 대규모 실업과 단순 노동자의 급속한 소득 감소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레이건 행정부 이래 공화당 보수정권에서 확산된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에 근거한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시장원리가 구조적 실업도 해결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정부의 사회안전망 투자를 포함한 복지 지출을 급격히 줄여왔다. 그 결과 미국 노동자 상위 20%를 제외한 나머지 80%의 실질소득은 45년 전인 1974년과 동일한 수준에 머무르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는 결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사실상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백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단순 노동자들의 누적된 사회적 불만과 분노는 2016년 대선에서 가히 폭발적 수준에 이르렀다.
18세기에 시작된 서구 시민혁명과 자본주의 발달이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확산 정착된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명제에 의하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서이다. 시장 실패의 가장 극단적인 징표는 기술과 경제제도 변화 과정의 결과로 발생하는 실업 현상의 방치이다. 따라서 미국이 무정부 상태가 아니라면, 단순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실업자들에 대하여 단기적 생계보장과 함께 비교우위 부문으로의 재취업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안전망 체계를 갖추는 정책 노력은 문명국가의 최소한도 요건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안전망을 포함하여 심지어 공교육에 대한 정부 지출까지 가파르게 삭감해온 미국 정부의 퇴행적 정책들이 계속된 결과, 선동적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거짓논리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정치적 문맹자들이 미국 유권자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오늘날의 미국이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트럼프가 쏟아내는 예측 불가능한 선동주의적 보호무역정책과 산업정책들은, 중국을 포함한 외국 기업들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들의 투자 불확실성을 높이면서 투자 급감에 따른 경기위축 우려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세계 경제 역사를 통틀어 처음 경험해 보는, 예측 불가능한 선동적 정치인이 초래한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투자 감소 및 실물경기 침체를 막기 위하여, 금리 인하 등의 확장적 금융정책은 오히려 경제 불확실성을 더욱 높일 뿐이라는 것이 많은 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문제의 원인인, 불확실성의 근원인 선동적 정치인의 행동 교정이 경기위축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다. 더욱 근본적인 대책은 이런 선동적 정치인이 선출된 원인이었던 사회적 분노가 재발하지 않도록, 승자 독식의 지속 불가능한 무역 및 경제체제를 지속 가능한 포용적 무역 및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