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교수,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우선 한·일 간의 경제 분쟁을 촉발시킨 일본의 반도체 소재 대한(對韓) 수출규제를 넘어 우리 산업이 온전히 살아갈 국가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화이트리스트(안전보장우호국) 제외에 따른 다양한 공산품 등에 대한 수출규제 대응책도 짜야 한다. 그의 등용을 결정한 문 대통령 입장에서 가장 화급한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 연구개발(R&D) 중심 부서로서 4만 개가 넘는 기업 연구소, 2만 명이 넘는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연구개발 인력, 그리고 이공계 박사학위자의 70%를 수용하고 있는 대학을 ‘국가과학기술인재’라는 울타리 속에서 지원·육성·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과기부는 최근 국가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연구개발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고 중장기적 로드맵과 반복된 실패를 통해 성취되는 속성이 있어 시각을 다투는 분쟁에선 마땅한 해결책을 내기 어렵다.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이 스크럼을 짜서 금방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은 국민 전시용 미봉책이지 진정한 답안은 아니다.
과기부의 한계와 고민이 여기에 있다. 산업정책과 기업전략을 주 업무로 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박근혜 정부 때 창조경제정책에서 뒤로 밀렸고, 문재인 정부 들어 대기업과 전경련이 무시당해 왔다. 과기부가 평시에는 이런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그런대로 지나갈 수 있었으나 이번과 같은 난제 앞에서는 산업기술과 산업정책, 기업전략을 순발력 있게 포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들을 과기부가 독자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번 사태로 문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상당한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과기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업해 포괄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새 과기부 장관은 기업에 있어 본 대학 교수다. 기초연구부터 기술개발까지 ‘전주기 연구개발’ 체계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반도체 소재·부품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기대치가 누구보다 높은 이유다. 국가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전략의 중장기 로드맵을 정교하게 만들고, 이를 산업기술 및 산업정책과 조화시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문 대통령은 새 장관에게 이 같은 전방위적 능력을 기대하고 있다. 새 과기부 장관은 정치와 관료의 벽을 뚫고 부서 간의 영역 다툼을 헤쳐 나가야 한다.
새 장관이 반드시 챙겨야 할 일 가운데 또 하나는 제4차 산업혁명이다. 과기부가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가는 주무 부서이기 때문이다. 과기부는 그 정책을 만들고 확산하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지원하고 있다. 2017년 9월 출범한 이 위원회는 7월까지 12차례 회의를 하며 많은 의제를 내놓았으나 태반이 논의에 머물렀다. 11월께 제2기 위원의 임기가 끝나지만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AI,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 3D프린팅, 바이오 등 제4차 산업혁명을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서 소개하고 그 대책을 논의해왔지만 실력과 안목의 부족, 진정성과 절실함의 결여 등으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제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들의 시장화와 사회 구현으로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쳐다보고만 있는 형국이다. 새 장관은 AI 전문가라고도 한다. 식어버린 제4차 산업혁명에 열기를 다시 불어넣고, 새로운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게 그에게 주어진 긴박한 임무다. 예컨대 소재·부품 전략을 극일(克日)을 넘어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전략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일도 그 일환이다.
기술전쟁과 산업전쟁이 어우러진 난삽한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새 과기부 장관에게 주어진 사명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