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게임산업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입력 2019-06-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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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게임업체 A사는 작년까지 3년째 적자를 냈다. 2010년 창업 이후 한 때는 모바일 앱마켓에서 1위를 차지할만큼 ‘잘 나가던’ 회사였다. 최근에는 ‘인수합병’ 얘기까지 솔솔 돈다. 초기 몇 개의 히트작 이후에 이렇다 할 ‘대박’은 없이 거푸 ‘쪽박행진’을 거듭하며 생긴일이다. 회사가 안 좋아지자 설상가상 직원들의 ‘각자도생’이 겹치며 직원 수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사람이 없으니 후속작 개발은 하세월이다. A사 관계자는 “전체 파이가 늘지 않는데 반해 경쟁만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며 “도산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때 한국을 정보기술(IT)강국의 반열에 올렸던 국내 게임산업이 한계점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7년까지 연 평균 20%씩 매출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 게임시장은 2018년부터 성장률이 6%이하로 꺾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201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매년 수 조 원 규모씩 덩치가 커지던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는 2017년 13조 1423억 원, 2018년에는 13조 9904억 원으로 성장세가 둔화되는 모습이다.

포화상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콘텐츠진흥원이 전망하는 올해 게임시장 규모는 14조 5349억 원 정도. 성장세가 급감한 2018년의 절반인 3%정도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문제는 이런 소폭의 성장세도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중국, 일본 등 국제적 경쟁자들은 빠른 속도로 한국의 지분을 잠식중이다. 2017년 한국의 세계 게임시장 점유율은 6.2%로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은 4위로 선방했다. 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누수가 관찰된다.대표분야인 PC게임은 수 년간 2위를 유지하다 미국에 밀려 3위로 쳐졌다. 모바일 게임(4위)도 2015년(2위)에 비해 경쟁력이 약해졌다. 콘솔게임 분야는 점유율 0.8%로 영향력 자체를 논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여기에 풀리지 않는 정부의 규제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겠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최근 결정은 업계를 사면초가로 몰아넣고 있다. 5세대(5G)이동통신 기술과 더불어 게임을 4차 산업혁명의 쌍두마차로 꼽은 정부의 목소리가 무색하다는 자조가 나올정도다.

고질적인 열악한 대우 등으로 기술자들이 이탈하는 것도 문제다. 인재 이탈은 대표적인 인재중심 산업인 게임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게임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인원은 2012년 9만5051명이었지만 지난해 상반기 기준 7만7340명으로 2만 여명이 줄어들었다. 게임 제작 및 배급업체도 2017년 기준 888개로 전년 908개에 비해 줄었으며 현재도 감소하는 추세다. 인력들이 게임업계를 떠나고 새로운 신작 개발이 더디면서 성장 동력이 꺼지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정체조짐을 보이자 투자도 움츠러들고 있다. 벤처캐피털(VC)의 신규 게임업체 투자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VC투자가 매년 신기록 경신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6년 전체 투자가 약 3.1% 증가할 때 게임에 대한 투자는 15.2% 줄었다. VC투자가 역대 최대였다는 작년에도 게임에 대한 투자는 평균 투자액의 4분의 1에 그쳤다. 이마저도 최근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등재하면서 투자가 더 얼어붙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 게임산업의 위기의 배경에는 일부 대형사들의 시장 독식으로 인한 새로운 콘텐츠의 고갈이 자리잡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900여개 게임업체 중 ‘빅 3’라 불리는 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의 시장점유율은 작년기준 43.1%에 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사의 특성상 새로운 시도보다는 이미 검증된 이른바 ‘돈 되는’ 것만 자기복제하는 경향이 많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히 시험해 볼 수 있는 중소업체들의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소업체들은 시장정체, 투자감소, 인재이탈의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능한 개발자들은 대우좋은 대형업체로만 눈을 돌리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인디게임사들은 인력채용이 되지 않아 개발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시장 초창기때부터 시장을 이끌어온 것은 열정으로 뭉친 소규모 개발자들”이라며 “이들이 빠져나가 생사가 위태로운 중소·인디게임사가 무너지면 한국 게임시장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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