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나무도 사람도 상처를 품고 굳건해진다

입력 2019-05-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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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언제인가 북유럽 어느 나라의 식물원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줄기가 곧고 나무껍질이 순백색으로 멋진 자작나무들이 줄지어 굳건한 모습으로 서 있는 광경을 만났습니다. 줄기도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에서는 보지 못했던 크기로 아주 굵게 자라서 더 건장해 보였습니다. 그 멋진 모습에 넋을 잃고 한참 동안 그 나무들 주변을 맴돌면서 멀리서 또 가까이서 나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자작나무의 멋진 매력을 한껏 즐기던 순간 그 나무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곧고 매끈하게 자란 것만 같은 나무줄기는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울퉁불퉁하게 상처가 있었습니다. 또 가지가 자라난 부분마다 줄기껍질에는 가지의 양옆으로 길게 찢어진 상처도 있었습니다. 멀리서는 온통 깨끗한 순백색으로만 보이던 나무껍질도 상처가 난 곳마다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실 나무줄기의 구조를 조금 더 알아보면 나무껍질에 난 상처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나무줄기를 옆으로 잘랐을 때 단면을 단순하게 구분해 보면 바깥쪽에 나무껍질이 있고 그 안쪽에 흔히 우리가 목재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는 부피생장을 합니다. 이렇게 줄기가 굵어지도록 새살을 만드는 조직이 나무껍질과 목재 사이에 얇은 층으로 존재합니다. 이 조직을 ‘부름켜’ 또는 ‘형성층’이라고 합니다. 즉, 이 부름켜 조직이 새살을 만들어서 안쪽으로는 목재를 만들고 바깥쪽으로는 나무껍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장하는 과정을 보면 나무껍질은 가장 바깥쪽이 가장 오래된 부분이고 목재는 가장 중심부가 가장 오래된 부분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줄기가 두껍게 생장할 때 껍질 바로 안쪽에서 살이 늘어나다 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껍질 바깥쪽이 터지고 갈라지며 상처가 생기고 시간이 더 지나면 일부분씩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무의 성장은 상처를 필수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처를 많이 품을수록 굳건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나무줄기를 살펴보면 굳건해 보이는 나무가 한편으로는 연약한 생명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무껍질의 가장 바깥쪽은 지속적으로 터지고 갈라지고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껍질은 나무줄기 두께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은 층에 불과합니다. 이 얇은 층에서도 안쪽 일부를 통해서만 잎에서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양분이 온몸으로 전달됩니다. 나무의 얇은 껍질이 보호막이자 생명을 유지하는 핏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껍질을 한 바퀴 도려내면 양분 전달이 끊겨 오래지 않아 그 나무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또, 나무는 껍질의 일부만 벗겨져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보호막인 껍질이 없어진 부분을 통해 목재 부분에 세균이나 해충이 파고들어 줄기의 안쪽을 썩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 큰 구멍이 생겨 줄기가 나무 전체를 지탱하는 힘이 약해집니다. 이렇게 구멍이 생긴 나무는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당당하고 굳건해 보이는 나무가 사실은 상처 많은 얇은 껍질에 생명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도 나무와 같아 보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특히 사람 관계에서 마음을 다치는 일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받은 상처들이 스스로를 좀 더 굳건하게 만드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나무에서 보듯이 당당하고 굳건해 보이는 사람도 한 꺼풀 마음속은 분명 연약한 감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혹시 내가 그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그의 얇은 나무껍질을 벗겨내어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사회 여러 곳에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고 듣습니다.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들 자체로도 상처가 생깁니다. 우리 모두 서로서로의 상처 입은 얇은 껍질마저 벗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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