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에 대한 한국의 최종 승소 파장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그 후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현을 비롯한 주변 8개 현의 수산물 50종에 대해 수입제한조치를 내렸다. 이때 세계 54개 국가와 지역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2013년 8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한국 측이 8개 현의 수산물을 전면적으로 금수 조치했다. 이에 일본이 한국의 조치가 지나치게 차별적이라고 해서 WTO에 제소한 것이다. 이에 대한 1심은 2018년 1월 한국의 패소로 판정이 내려졌다. WTO가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은 방사능 기준치 이하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일본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출품에 대한 방사능 기준치를 대폭 강화했다. 방사능 수치는 보통 식품 중의 세슘 수치로 표시되는데 일본은 세슘 수치 기준을 일반식품의 경우 기존의 370Bq/kg로부터 100Bq/kg로 더욱 엄격하게 만들었다. 이런 엄격한 검사를 통과한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에는 문제가 없다고 WTO는 1심에서 판결했으나 이날 최종심에서 뒤집어진 것이다. WTO는 한국 측 주장, 즉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의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하라고 해도 주변 바다 자체가 오염돼 있어 수산물의 오염 위험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샘플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샘플 이외 수산물의 위험성을 아예 간과할 수 없다는 상식적 판단인 셈이다.
현재도 한국뿐만이 아니라 23개 국가와 지역들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왜 한국만을 WTO에 제소한 것일까? 그 이유는 한국의 규제가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 수산물에서 세슘이 미량이라도 검출되면 세슘 이외 방사능 물질 16종의 검사를 일본에 추가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가장 검사가 까다로운 한국에 승소하면 나머지 국가와 지역에 대해서도 규제완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한국을 WTO에 제소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일본 국민의 반응은 의외로 이성적이었다. 판결에 대한 기사나 해설에 붙은 댓글 중 60% 이상이 이번 판결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일본의 지지(時事)통신이 12일 보도한 뉴스에 달린 댓글 중에는 “일본인도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을 먹지 않는데 당연하다”, “안전·안심이 일본 농수산물의 세일즈 포인트니까 위험성 우려가 있는 식품을 외국에 강매하려고 하면 안 되잖아” 등 이번 판결을 오히려 당연시하는 댓글들이 많았다. 후쿠시마 주변의 농수산물 문제는 한국은 물론 일본인의 식품안전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그러므로 이번 판결에 동조하는 일본인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앞으로도 한국에 양자 협의로 계속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수산물 금수 조치 철폐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자세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대단히 문제가 있는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일본 정부의 태도는 다분히 국내용 메시지일 수 있다. 해당 지역 주민의 지지를 잃어버릴까 여당인 자민당과 일본 정부는 우려한 것이다. 패소가 결정된 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급히 후쿠시마로 향했고 현지를 방독마스크나 방독복을 착용하지 않고 시찰하면서 후쿠시마산 쌀로 만든 주먹밥을 먹는 ‘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일본의 올림픽 담당 장관이 한 말이 주목된다. 스즈키 순이치(鈴木俊一) 올림픽 담당 장관은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때에도 재해지역의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소문에 의한 피해를 불식해 재해지역 식재료의 훌륭함을 계속 표명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패소로 도쿄올림픽에서 후쿠시마 주변 지역 농수산물을 외국인에게 적극적으로 판매하려는 일본 정부의 속셈은 상당히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번 패소로 한국에 대해 다른 문제, 예를 들어 강제징용자 판결 문제 등도 국제재판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해결을 도모할 생각이었던 일본 정부의 방침에 제동이 걸렸다.
한편 한국도 앞으로 방사능 기준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왔다고 본다. 국내 농수산물의 세슘 기준치는 여전히 370Bq/kg이다. 방사능 문제는 국가를 넘은 전 세계적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