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우리 국민 중에 밖으로는 외세에 위축되지 않고, 안으로는 다 함께 잘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기야 일부 졸부들은 자신들의 부(富)를 더 과시하기 위해서 다 함께 잘사는 것을 꺼리고 오히려 빈부의 격차가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옹졸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졸부다.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면서 존경받는 부를 누려야 졸부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외세에 빌붙어서 출세한 사람들 또한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적으로는 은근히 미국이든 일본이든 외세가 적절히 작용해서 우리 국민들이 어느 정도 위축되어 살기를 바랄지 모른다. 그래야 외세를 등에 업은 자신이 더 위세를 부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위축의 한자 표기는 두 가지이다. ‘蝟縮’과 ‘萎縮’이 바로 그것이다. 蝟는 ‘고슴도치 위’, ‘萎’는 ‘시들어 마를 위’이며, ‘縮’은 ‘오그라들 축’이라고 훈독한다. 고슴도치는 적으로부터 위협을 당하면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움츠리면서 몸에 난 모든 가시를 곧추세움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가시에 찔릴까 두려워 공격을 못하게 한다. 이처럼 상대의 공격 앞에 잔뜩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려 방어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蝟縮’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萎縮은 식물이 시들어 마름으로써 쪼그라드는 것을 말한다. 긴 가뭄에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마르는 경우도 있고, 갑작스런 추위에 잎이 모두 얼어서 맥을 못 추고 주저앉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상태가 모두 萎縮이다. 즉, 견디다 못해 스스로 힘이 다하여 시들어 쪼그라드는 것이 萎縮인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게 되었다. 남과 북이 함께 잘사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때다. 우리 모두 외세에 눌려 蝟縮되는 일도 없고 스스로 자학하여 萎縮되는 일도 없이 이웃을 배려하며 평화와 공동번영의 꿈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