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상표표시제 폐지에 명암 엇갈려

입력 2008-06-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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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업계 '환영', 정유업계 대책마련 '부심'

정부가 고유가 대책으로 내놓은 주유소 상표표시제(폴사인제)가 폐지되면서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주유소업계는 숙원사업이 해결됐다며 크게 환영한 반면 정유업계는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대한 대책마련에 부심하는 표정이다.

상표표시제는 주유소가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걸고 해당업체의 석유제품만을 판매하는 제도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하고 정유사간 품질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1992년에 도입됐다.

정부는 정유사 간 경쟁을 통해 주유소 공급 가격을 낮추면 소비자 가격도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고유가 극복 민생대책의 일환으로 상표표시제 고시 폐지를 추진해왔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사-대리점-주유소로 수직계열화돼 있는 석유상품 유통구조를 개선, 유통시장에서의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석유제품판매 표시광고 고시'를 폐지키로 했다. 시행일은 관련 업계의 준비기간을 고려해 오는 9월1일부터다.

이에 따라 앞으로 주유소는 SK에너지 등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건물 등에 달더라도 혼합판매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고 표시할 경우 다른 정유사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고, 여러 회사 제품을 혼합해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정유사-주유소, 희비 엇갈려

이번 공정위 결과에 대해 주유소업계는 환영했다.

정상필 주유소협회 팀장은 "그동안 주유소업계의 숙원사업이었던 상표표시제 고시폐지로 정유업계의 과점체제가 깨지고 자연스럽게 정유사간 가격경쟁을 촉진할 수 있게 됐다"며 "석유제품의 주유소 공급가격이 떨어지면서 결국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 팀장은 "그동안 배타적 공급계약으로 인해 한 정유사 제품을 전량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며 "이번 고시폐지가 더 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유사와 주유소 간 맺는 배타적 공급계약이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유업계는 대책마련이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이미 예견돼 있던 일이지만 막상 공정위의 발표로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정유사 관계자는 "상표표시제 폐지는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고 정부가 결정하는 사안인만큼 현 상황에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며 "시장환경이 바뀌면 그에 다른 전략도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가격 하락 있을까?

정유사는 이번 상표표시제 고시 폐지로 얼마만큼의 가격인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정유사끼리 경쟁을 시켜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복안이지만, 석유제품의 유통마진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을 촉발한다고 해도 가격인하 효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제품에 혼유가 되는 상황에서 카드할인이나 마일리지 제도 등 각종 보너스 헤택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는 힘든 만큼 재검토가 불가피해 고객 서비스가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유사 경쟁을 통해 가격이 인하하더라도 그 폭은 제한적"이라며 "판매가 부진한 주유소에서 인하요인을 100% 반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정상필 팀장은 "현재의 시장유통 구조상 주유소들은 좀 더 싼 기름을 사다가 팔아서 경쟁해 살아남는 것"이라며 "주유소만 이득을 행긴다는 것은 현재 시장상황을 잘 모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의 경우 전체 시장에 20%, 서울의 경우 임대까지 포함해 50% 가까이 되는 만큼 전 주유소로 확대대기까지 상당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석유 제품 품질 관리가 숙제

한편 폴사인제 폐지로 시중에 유통되는 품질 관리 문제가 떠오르게 됐다. 주유소가 여러 정유사의 제품을 섞어 팔 경우, 정유사들은 엄격하게 품질을 관리할 동기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위는 주유소가 여러 정유사의 제품을 혼합 판매할 경우, 그 사실을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표시하도록 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이번 고시폐지로 오히려 여러 정유사의 제품이 섞이는 과정에서 품질만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 팀장은 "여러 정유사의 석유제품을 섞어 판매하는데 따른 품질문제는 일차적으로 각 주유소가 책임을 지는 만큼 물질문제에 대해서는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생산자가 불분명한 제품은 판매자가 책임을 지도록 돼 있어 주유소가 책임을 지는만큼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석유시장 관리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지식경제부도 같은 등급의 혼유는 현행 법상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다.

지경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같은 휘발유나 경유제품끼리 섞는 등 같은 등급의 제품을 혼유하는 것은 현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현재 무폴 주유소에서는 혼유돼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불량 석유제품 유통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지식경제부,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한편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가격 담합 의혹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등 변수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스오일 등 4대 정유사들이 공동 대응하기보다 개별적인 대응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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