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P) 투자(I) 반도체가격 급락(G) 모두 '경고등' 켜져
한국 노동생산성 OECD 하위권
기업투자, 반도체 빼면 21% 감소
수출 외끌이 D램 가격도 고점 논란
경쟁·규제·경제… 안팎 삼중고 시름
글로벌 불황에 대한 강력한 경고음이 쏟아져 나오면서 국내 재계도 백척간두의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경영의 기본이 되는 생산성(Productivity)과 투자(Investment)의 부진, 그리고 한국 수출의 외기둥 역할을 했던 반도체 시장 급락(Ground zero)을 합쳐 ‘돼지의 위기’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그라운드 제로’는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지난해 사실상 한국경제를 외끌이했던 반도체의 가격이 올해 심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생산성 저하 우려로 직결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탄력근무제 도입과 상여금 지급 방법을 놓고 노사 갈등이 고조되면 대기업도 극심한 후폭풍에 빠질 수밖에 없다.
A그룹 관계자는 “임금 인상과 생산량 증가가 동행하지 않으면 생산성은 떨어지게 되고 제품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측면에서 올해 매출이 간신히 전년 수준을 지키더라도 이익은 ‘뚝’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이미 2016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2.9달러로 OECD35개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이다.
자동차업종을 보면 최저임금 상승으로 완성차 5개사의 평균 연봉은 9000만 원 초반에서 9600만 원대로 급증했다. 이는 도요타(약 8400만 원), 폭스바겐(약 8300만 원)보다 높은 수치다. 반면 한때 500만 대에 육박했던 국내 자동차 연생산 규모는 지난해 400만 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선행지표인 투자위축도 가파르게 진행될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30대 그룹의 투자 규모는 45조695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34% 증가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을 빼면 오히려 21%나 급감했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투자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은 위험신호”라며 “투자가 줄면 자본과 노동생산성, 고용, 자본생산성이 감소해 투자가 다시 줄어드는 악순환이 나타나게 된다”고 경고했다.
투자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는 각종 규제가 꼽힌다.
B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 해외직접투자액이 사상 최대(131억1000만 달러)였는데 공유경제 등에 대한 각종 규제와 법인세 인상에 따른 이른바 도피성 해외투자도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산업 역시 고점에 다다랐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생산은 지난해 5월, 6개월 만에 마이너스(-7.0%)로 전환한 데 이어 7월부터 11월까지 10월을 제외하고 4개월간 전달보다 생산이 감소했다. 생산 부진의 주 요인은 반도체 가격의 하락이다. 올해 1분기 역시 메모리 반도체 평균가격이 20% 안팎으로 하락하고 연간으로도 지속적인 약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가격은 급락이 아니라 조정되는 수준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반도체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시설 투자도 계획대로 진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위축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공급초과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현지 업체들은 올해부터 메모리를 대규모 공급할 예정이다. 또 중국 정부는 국내 반도체 업체를 상대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 담합 의혹을 제기하며 반독점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친화적 분위기 조성과 투자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면서 “신성장 동력의 발굴·육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