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임중도원(任重道遠) vs 일모도원(日暮途遠)

입력 2018-12-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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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늘 일상의 반복이지 연말연시라고 새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맘때면 인간이 구획지어 놓은 기획인 줄 알면서도 새롭게 계획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된다. 매일 보는 태양인데도 지는 해에는 아쉬움을 되새기고, 뜨는 해에는 새 희망을 표하는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내가 한 일, 할 일에 대해 회고하고 한마디로 응고해 보아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대학교수들은 2018년 한 해의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을 뽑았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현 시국 평가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바람을 담은 것이지만, 개인의 연말연시 회고와 다짐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갈 길이 멀다.’ 이 뜻을 담은 사자성어는 임중도원 외에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이 있다. 둘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그 온도와 속도는 다르다. 임중도원은 “(부지런하되)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의 숙성의 여유가 담겨 있다. 먼 길이기에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는 숨은 의미가 있다. 일모도원에는 “빨리, 서둘러” 하며 속성의 뜨거운 재촉이 깔려 있다. 길이 멀어 초반에 스퍼트를 내 진도를 뽑아놓아야 한다는 의미도 숨어 있다. 일모도원의 도(途)와 임중도원의 도(道)는 같은 길이라도 그 차선이 다르다. 도(途)가 수레 한 대 다닐 정도의 1차선이라면 도(道)는 두 대가 다니는 2차선의 넓은 길이다. 당연히 깔려 있는 인생 자세도 다르다.

일모도원은 ‘사기열전’의 ‘오자서열전’에서 비롯됐다. 이야기의 주인공 오자서(伍子胥)는 춘추시대 오나라 정치가지만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다. 초나라 평왕이 간신의 모함만을 듣고,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을 처형하자 오나라로 망명한다. 합려를 왕으로 즉위시킨 후 오나라를 군사강국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오나라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대대적으로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킨다. 그가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가문을 멸족시킨 것에 대한 복수였다. 원수인 평왕의 무덤을 샅샅이 수소문해 찾아내선 관에서 시신을 꺼내 300대의 매질을 가한다. 고향 친구가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힐난하자 이때 오자서는 일모도원으로 응답한다. “해는 저물려 하고, 갈 길은 멀어(마음이 급하니)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

일모도원과 대구를 이루는 도행역시(倒行逆施)는 그 뜻이 보다 노골적이다. 시간에 쫓기니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하고자 하는 일을 한다는 조급성이 담겨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과정의 옳고 그름, 인정사정은 따질 겨를이 없다고 풀이해볼 수 있다. 오자서는 부형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에는 성공했지만, 나중에 모함을 받아 자결하는 비장한 최후를 맞는다.

임중도원은 ‘논어’에 나오지만 공자가 아닌 제자 증자가 한 말이다. “(선비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어야 한다. 짐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을 임무로 삼았으니 짐이 무겁고, 죽을 때까지 평생 해야 할 일이니 길이 먼 것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인간으로서 평생 지고 있어야 할 무거운 짐은 인간다움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기에 갈 길이 먼 것이다. 무거운 짐을 죽을 때까지 내려놓지 않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너그러운 포용성의 홍(弘)과 굳은 의지의 의(毅)다. 증자는 스승인 공자로부터 “둔하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유학 적통을 계승할 수 있었다. ‘반짝거리는’ 뛰어남은 부족할망정 쉬지 않는 부지런함의 덕이 컸다.

성경의 잠언을 보면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다’로 부지런함과 조급함을 구분한다. 일모도원이 단기적 시각의 조급함이라면 임중도원은 장기적 시각의 부지런함을 대표한다. 둘의 유사점은 ‘목표가 무겁고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 성취하고자 굳세게 매진하는 것이다. 다른 점은 ‘마음의 여유와 과정의 올바름’이다. 목표를 위해 갓길, 샛길로 가려 하기보다 길을 넓히고자 하고, 편가르기보다 포용해 하나라도 더 함께 가려는 것이 부지런함이다. 2019년 새해엔 ‘일모도원’의 조급함보다 ‘임중도원’의 부지런함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부지런하되 여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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