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하지만 그는 예약했던 수요일에 검진을 받으러 가지 못했다. 그의 입사 동기인 특판팀 최 과장이 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사직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소식을 들은 성민과 그의 동기들이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한 것은 화요일 저녁. 성민은 다음 날 검진을 위해서 최대한 술을 마시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촌동생이 논산에서 딸기 비닐하우스를 하는데 예전부터 같이 하자고 계속 말해왔거든.”
최 과장은 조금 쓸쓸한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처음엔 좀 고생을 한다고 하는데… 지금 버는 돈이나 별 차이도 없고, 앞으론 거기가 더 낫다고 해서…”
성민과 그의 동기들은 광역시 구도심에 위치한 쇼핑몰에서 벌써 십 년 넘게 근무하고 있었다. 성민이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 이렇다 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가 없어서 오전 10시만 돼도 사람들이 말 그대로 밀물처럼 쇼핑몰 안으로 몰려오곤 했다. 쇼핑몰에서 공개 채용으로 뽑은 성민의 동기만 해도 스물일곱 명이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동기는 최 과장을 포함해 다섯 명이 전부였다. 이제 곧 네 명이 되는 거겠지.
“잘했어, 잘했어. 어차피 여기 남아 봤자 이삼 년 안에는 다 정리될 팔잔데…”
물품수검팀의 송 팀장이 최 과장을 위로한답시고 그렇게 말했다. 송 팀장은 동기 중에서도 그나마 진급이 가장 빠른 축에 속했다. 송 팀장이 말한 게 사실이겠지. 오 년 전부터 쇼핑몰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주변에 대형 백화점과 아웃렛이 들어선 것도 문제였지만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구도심의 붕괴였다. 사람들은 이제 모두 신도시에 위치한 맛집과 카페로 몰려갔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쇼핑도 했다. 이제 구도심에 남은 것은 나이든 플라타너스와 낡은 관공서 건물이 전부였다.
성민은 마시지 않으려 했지만 송 팀장의 말에 그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삼 년 안에 다 정리될 팔잔데 회사에 과태료가 나오든 말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성민은 울적하기보단 좀 화가 났고 그래서 눈앞의 술잔을 단숨에 비워버리고 말았다. 남들만큼 열심히 일했지만, 그래서 뭐? 그는 그런 심정이었다.
성민은 금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갔다. 아침 여덟 시에 가면 바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제법 많아서 성민은 대기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내시경하고 의사 선생님 면담한 후 가시면 돼요.”
간호사는 대기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검진표를 건네주며 그렇게 말했다.
“수면 내시경으로 할지, 일반으로 할지 체크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
수면으로 하면 추가로 오만 원을 더 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잠깐만 참으면 되는데 뭐 한다고 오만 원을 여기다 뿌려?”
성민이 수면 내시경에 체크하는 것을 옆에서 힐끔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성민은 지금까지 수면 내시경 외엔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좀 고통스럽다고 해서…”
“잠깐이야, 잠깐. 나이 든 나도 참는데 젊은 사람이…”
성민은 아주머니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다가 다시 일반 내시경으로 고쳐 적었다.
“이게, 이 검진이라는 게… 사람들 염려해주는 거 같지만 그게 다 병원들 배부르게 해주려고 하는 짓이거든. 검진 받아서 조금만 뭐 나와 봐? 또 바로 입원하라고 그러지. 우리 같은 사람들 건강이 진짜 염려되면 그냥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되는 거야. 그거 말고 더 건강 챙겨주는 게 뭐 있어?”
아주머니는 성민이 마치 국민건강관리공단 직원이라도 되는 듯 쓴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도 그냥 빨리 다 때려치우고 최 과장 따라서 딸기 농사나 지을까? 그러면 최소한 회사에 과태료는 나오지 않을 텐데…. 치사하게 회사를 협박하니 직원은 따를 수밖에….
성민은 아주머니와 짝을 이뤄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먼저 침대에 누워 내시경을 받는 동안 성민은 한 발 떨어진 곳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자자, 아주머니. 옆으로 누워서 무릎을 좀 굽히고요. 네, 좋아요. 그럼 시작합니다.”
입으로 천천히 호스가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아주머니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간호사 두 명이 아주머니의 상체와 하체를 따로따로 잡고 있었지만 철제 침대가 기우뚱해질 만큼 아주머니의 저항이 심했다. 호스를 잡고 있던 의사가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
“아, 이렇게 움직이려면 수면으로 하세요, 수면으로! 아주머니가 참겠다고 한 거 아니에요!”
의사의 짜증에 아주머니의 움직임이 잠시 잦아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는 다시 낮은 신음을 내며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성민은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오만 원을 아끼려면 어쩔 수 없이 남들보다 더 고통 받고 꿈틀거릴 수밖에 없는 인생. 그 모습을 보면서 지레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는 삶. 그 삶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주머니의 위 내시경이 끝나자마자 성민은 간호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지금이라도 수면으로 바꿀 수 있나요?”
아주머니는 웩웩 계속 헛구역질을 하며 앉아 있었다.
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