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이야기] 30. 작게, 더 작게 그리고 멋지게

입력 2018-12-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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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만년필연구소장

지난주 토요일 모나미153 볼펜 한 타스를 180원에 산 청년이 만년필연구소에 찾아왔다. 청년의 말인즉 일요일까지 3일간 153 타스를 한 사람에게 하나씩 180원에 판매한다는 이야기였다. 만년필을 고치고 있던 나는 180원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153볼펜이 180원이라, 내가 중학교 다닐 땐 50원이었는데 많이 올랐군요” 했더니 “소장님, 한 자루에 180원이 아니고 한 타스에 180원입니다. 한 자루에 15원꼴입니다”라고 답했다.

153볼펜이 처음 나온 1963년의 가격 15원으로 며칠간 이벤트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버스 요금은15원, 짜장면이 20원 정도 하던 것이 버스 요금은 1200원, 짜장면은 5000원 정도이니 300원 정도 하는 153 볼펜은 오른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값이 내려간 것이다.

1963년 우리나라에 쓸 만한 볼펜 모나미 153이 나왔을 때 세계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당해 사망한 것이 가장 큰 뉴스였지만, 만년필 세계는 본격적인 암흑기의 시작이었다. 1963년은 위와 아래가 점점 가늘어지는 유선형이 등장하면서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 1929년과 함께 새로운 만년필이 많이 등장한 해이다.

▲1963년 파커75 광고.
고도 성장기였던 일본에선 뚜껑이 길고 몸통이 짧은 ‘미니’라는 이름의 만년필이 세일러사(社)에서 출시되었다. 뚜껑이 닫혀 있을 때는 짧지만, 뚜껑을 꽂으면 상당히 길어져 와이셔츠 주머니에 꽂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다른 일본 회사인 파이로트 역시 신제품을 내놓았는데 이것 역시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뚜껑이 버튼을 돌리거나 누르면 바로 펜촉이 나와 쓸 수 있는 캡리스(Capless) 만년필이었다. 참고로 미니와 파이로트는 탄창에 총알을 끼우는 것처럼 잉크를 충전하는 카트리지 방식이 적용되었다. 좀 더 작고 좀 더 편리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만년필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는 셰퍼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임페리얼 라이프 타임’을 내놓았다. 이 만년필 역시 손잡이에 독립된 펜촉이 아닌 상감펜촉인 인레이드(inlaid) 펜촉이 장착돼 있었지만, 1959년에 나온 전작(前作) PFM보다는 작아졌고 잉크 충전 방식 역시 편리한 카트리지 방식을 채택하였다.

셰퍼의 둘도 없는 라이벌 파커 역시 신작을 내놓았다. 셰퍼보다 역사가 오래된 창립 75주년을 맞이하여 ‘파커75’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파커75 역시 카트리지 방식이 채택되었고 전작인 파커51보다 작아진 것은 물론 여기에 뚜껑과 몸통을 은(銀) 재질에 격자(格子) 무늬를 넣어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졌다. 은 재질에 격자 무늬는 당시 사장이었던 케네스 파커의 은제 담뱃갑에서 그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지만, 진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은 재질에 격자 무늬로 대표되는 파커75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만년필의 부흥기가 다시 시작되는 1980년대까지 대부분의 만년필 회사들이 따라 할 만큼 고급 만년필의 대명사가 된다.

그리고 파커75엔 은 재질 격자 무늬 말고도 성공하는 요소가 또 하나 숨어 있는데, 그것은 세트를 이루는 볼펜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그냥 유행을 따라 작게 한 것이 아니고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작게 만들었던 것이다. 만년필 때문에 볼펜이 팔렸고 볼펜 때문에 만년필이 팔렸다.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볼펜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 다른 신작들과 차별화한 것이다. 게다가 1960~1970년대 당대 최고 만년필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경쟁자일지라도 실력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깎아내리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을 인정하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인정할 때 자신도 성장하기 때문이다.만년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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