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해봤다] BJ와 시청자가 함께한 연탄·김장 나눔봉사…“인생은 함께 사는 것”

입력 2018-12-03 16:20수정 2018-12-0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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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힘 좀 쓰게 생기셨네. 12월에 사랑의 연탄·김장 나눔 봉사 가는데 같이 하시죠?”

얼마 전 인플루언서 기획 기사를 취재하면서 팝콘TV에서 활동하는 BJ 처니오빠(46)에게 제안을 받았다.

'그래. 오랜만에 좋은 일이나 한번 해보자.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속담처럼 일도 하고 연말을 맞아 기사도 쓰면 좋은 거지.'

▲BJ들과 시청자들이 1일 화훼마을에 집결했다. 이날 이들이 준비한 800kg의 김치와 3300장의 연탄은 이곳의 75가구에 골고루 나눠졌다. (이재영 기자 ljy0403@)

12월의 첫날인 1일,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화훼마을에서 BJ 처니오빠를 다시 만났다. 문정동 화훼마을은 75가구의 작은 판잣집들이 좁은 골목을 마주하고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는 개인방송 플랫폼 팝콘TV, 밴드TV, 깡통TV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개인방송을 하는 BJ들, 시청자들과 함께 ‘사랑배달과 행복버무리기 봉사활동’을 기획했다. 연탄 3300장과 김장 800kg을 즉석에서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목표.

이번 나눔 행사의 기획은 BJ 처니오빠가 나서서 했지만, 실질적인 나눔 행사는 많은 BJ와 팬들에 의해 성사됐다. 다수의 개인방송 시청자는 BJ 처니오빠를 통해 연탄과 김장 준비를 위한 돈을 후원했고, BJ 일부와 또 다른 시청자는 현금이나 국수, 닭갈비, 귤, 비타500, 부추전 등을 후원했다.

계획된 시간은 정오부터 시작이었지만, 기자가 도착한 오전 11시 30분부터 이미 20여 명이 모여 준비에 나섰다.

우선 급한 것은 김장이었다. 김장 초보들이 모여 800kg 분량의 김치를 만들어야 했다. 남자들은 배추를 나르고, 포장하고, 바닥에 매트를 깔고 김장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등 힘쓰는 데 투입됐다. 딱 봐도 힘 좋아 보이는 기자는 김치를 포장하고 10kg 상자를 옮겨 한쪽에 쌓는 일이 맡겨졌다.

▲김장 초보들이지만, 이들이 정성껏 만든 김치는 10kg들이 80박스를 채웠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절인 배추에 물기부터 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시작부터 김장 초보들에게 난관이 닥쳤다. 절인 배추의 물기를 빼고 김칫소를 넣어야 김치맛이 들 텐데, 절인 배추가 이날 도착한 터라 물기를 뺄 시간조차 없었다. 다들 김장을 해보지 않은 티가 그대로 났다. 어깨너머로 김장을 배운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이 와중에 절인 배추를 지금이라도 한곳에 쌓아 물기를 빼고 김장을 하자는 의견과 그대로 김장을 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의견이 맞섰다.

결과적으로 평상에 절인 배추를 쌓아 물기를 빼고 김장을 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겨울 같지 않게 따가운 햇볕이 비춰 금방 물기가 빠질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내 여성 BJ들을 중심으로 김장 나눔 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부분 생애 첫 김장이었기에 주민분들이 옆에서 일일이 김장하는 법을 알려주며 도왔고, 배추에 양념이 된 김칫소를 잘 묻혀가며 맛깔스러운(?) 김치를 만들어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치를 김장비닐에 넣어 두 차례 밀봉한 후 상자에 담아 다시 포장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되자 포장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김장비닐을 묶어서 새로운 김장비닐에 다시 넣어 재차 묶고, 상자에 담아 테이프로 포장하고. BJ 비니(38·본명 한수빈)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박스 다 됐어요. 새 박스 주세요”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마음이 타들어 갔다.

‘왜 여기엔 사람을 더 투입해주지 않을까’라는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올 무렵 추가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김치 포장에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기자에겐 역시 힘을 요구했다. 포장된 김치를 한편에 쌓아 놓는 임무가 주어진 것. 두 상자씩 나르면서 쌓기 시작하자 어느새 수십 상자의 김치들이 완성됐고 한 마을 주민은 “총각은 일 참 잘하네”라는 칭찬을 건네 쑥스럽게 했다.

일부 봉사 참석자들이 길을 찾느라 헤매다 다소 늦게 온 까닭에 연탄 봉사 투입이 늦어졌다. 하지만 김장이 어느새 마무리되기 시작했고, 김장하던 사람들도 연탄 봉사를 마무리하고자 자리를 옮겼다.

▲좁은 골목 사이마다 20여 명을 한 조로 봉사자들은 손으로 연탄을 건네며 주민들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기대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기자도 뒤늦게 연탄 배달 현장에 합류했다. 마지막 김장 포장까지 쌓아놔야 했기 때문. 한 장에 3.65kg 무게의 연탄을 집집이 쌓아나가며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연탄보일러를 사용해 불을 지피던 생각이 났다.

최근 3년 새 서민의 연료인 연탄 가격도 무려 200원이나 인상됐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2016년 소비자가격으로 600원이었던 연탄은 올해 800원으로 33%나 올랐다. 특히 배달료를 포함하면 고지대달동네, 옥탑방, 농어촌산간벽지 등에서는 900원이 넘을 수 있어 에너지빈곤층에게는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정부에서는 에너지바우처나 연탄쿠폰 등을 통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들에겐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탄 배달과 김장 나눔행사를 마친 봉사자들은 한 데 모여 주린 배를 채웠다. 직접 담근 김치에 현장에서 푹 삶은 수육, 굴, 부침개 등 푸짐한 먹거리가 차려졌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사랑의 연탄·김장 나눔 봉사 현장이 축제 현장으로

100여 명이 한데 모여 2시간 30여 분간 진행한 끝에 '사랑의 연탄·김장 나눔 봉사'는 오후 2시께 마무리됐다. 이날 봉사에 참여한 BJ들과 시청자들은 김장하느라 지저분해진 매트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후원으로 준비한 수육과 부침개, 굴, 각종 음료와 막걸리, 맥주 등이 올려졌고, 이날 담근 김치 일부도 차려졌다. 개인방송을 통해서만 인사했을 뿐, 실제로 오프라인 만남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인 BJ와 시청자도 많았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아는 BJ가 행사를 주최하는 처니오빠뿐이었기에 다소 어울리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날 봉사를 함께하면서 친해진 사람들과 틈을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BJ 비니는 기자와 함께 김치를 포장하고 옮기는 작업을 끝까지 함께 했다. 몰려드는 박스 요청에 열일하고 있는 BJ 비니의 모습. (이재영 기자 ljy0403@)

특히 기자는 이날 내내 붙어서 함께 김장 포장을 도운 BJ 비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BJ 비니는 “사실 내 직업이 요리사인데. 오늘은 요리보다 포장을 맡게 됐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사람이 많아서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다 보니 오늘을 계기로 봉사활동을 종종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고 다니던 내게 한 BJ가 수육 한 조각을 건넸다. 육체노동은 허기를 부르고, 허기는 가장 강력한 조미료다. 그동안 먹었던 수육 중 최고로 맛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수육을 건네준 BJ에게 봉사에 참여한 소감을 들었다. BJ 하유(21·본명 김도은)는 “BJ 처니오빠로부터 봉사 제안을 듣고 참석해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면서 “김장이 처음이었는데, 옆에서 김치 만드는 법을 알려주시던 이모님(마을 주민)이 그러시더라. ‘집안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김장을) 먼저 배우네. 좋은 뜻으로 사회에서 먼저 배우니까 더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 뿌듯했다”라고 말했다.

▲진짜 봉사활동은 지금부터~ 마을주민들과 BJ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마을잔치는 이날의 백미였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식사를 마치고 마을잔치가 열렸다. 마을주민들과 이날 봉사에 참석한 BJ, 시청자들이 한데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주민들은 “연탄과 김장을 나눠준 여러분 정말 감사하다. 절대 잊지 않겠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이날 봉사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에는 걸그룹 LPG 출신의 BJ 유미(35)도 있었다. BJ 유미는 “김장이 처음이다 보니 고춧가루를 옷에도 묻히고 난리가 났다. 어르신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 한편으론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무대에서 활동하며 팬들과 접점이 다소 없었는데 이젠 개인방송 BJ로 활동하며 팬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뜻깊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팬과 함께 이날 봉사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걸그룹 LPG 출신의 BJ 유미는 이날 즉석 길바닥 공연을 벌였다. 역시 프로는 프로다. 주민들의 환호도 가장 컷다. (이재영 기자 ljy0403@)

결과적으로 ‘사랑의 연탄·김장 나눔’ 봉사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은 주말 내내 방바닥과 친구가 되도록 만들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는 게 이런 것일까?

하지만, 온몸이 쑤시도록 아파도 마음 한켠은 왠지 뿌듯함으로 부풀어 있었다. 나눔의 맛이 있다면 이런 것 아닐까.

(이재영 기자 ljy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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