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논(畓)에서 변하지 않는 것

입력 2018-11-2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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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민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논이용작물과장
논과 밭은 농사를 짓는 땅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논’은 물을 대어 주로 벼를 심어 가꾸는 땅으로 설명한다. 반면 ‘밭’은 물을 대지 아니하거나 필요한 때에만 물을 대어서 채소나 곡류를 심어 농사를 짓는 땅으로 정의한다. 사전적 정의처럼 우리나라의 논농사는 곧 벼농사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벼농사는 밭 상태에서 시작됐다. 물을 채운 논에 재배했을 때 월등한 수량과 품질을 보이는 벼의 생육 습성에 맞게 벼농사는 논 재배로 발전했다.

논과 밭은 농사를 짓기 위한 땅 이상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논의 기능은 실로 방대하다. 우리나라는 연중 강우량의 60~70%가 7~9월에 편중되어 있다. 논은 이 기간에 빗물을 저장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논에 고인 물은 지하로 침투되어 지하수의 공급원이 된다. 이 밖에 토양 유실 방지, 대기 정화, 생태계 보전, 경관적 가치 등을 지닌 논은 1㏊당 연간 2944톤의 홍수를 조절하고, 4143톤의 지하수 공급, 21.9톤의 이산화탄소 흡수, 15.9톤의 산소 공급 등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면 56조 원에 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전체 농경지 면적의 감소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해마다 논 1만6000㏊가 사라졌다.

농촌진흥청은 논이 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논의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논에 벼 이외의 타 작물 재배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서구화된 식단과 식습관 변화로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2000년 93.6㎏에서 2017년에는 61.8㎏으로 급감했다. 또한 의무 수입물량인 41만 톤 TRQ(저율할당관세) 쌀도 매년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매년 구조적인 쌀 공급 과잉 현상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곡물 자급률이 24% 수준에 불과한 국내 식량안보 실정상 쌀이 남는다고 무작정 논 면적을 줄일 수도 없다.

논에 밭작물을 옮겨 심기도 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밭은 90% 이상이 평지가 아닌 경사지 형태로 존재한다. 많은 비가 오더라도 자연스럽게 배수가 된다. 반면 편평한 땅인 논은 상대적으로 배수가 불리하다. 현재 벼 이외 논 토양에서 잘 자라는 작물은 찾기가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물 대부분은 수분 과잉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생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름철 강수량이 많은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논에 벼 이외의 작물을 심었을 경우, 심각한 습해를 입을 가능성도 크다.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일본은 2016년 콩 재배면적 15만㏊의 80%가 논에서 재배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콩 재배면적의 14%(17년, 6000㏊)만 논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도 논에 밭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밭작물을 논에서도 안심하고 심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에서는 논에서 밭작물 습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물관리 기술이 개발됐다. 논 토양 수분을 지하수위 조절을 통해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논에서 벼와 밭작물을 물 문제 없이 번갈아 가면서 재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로써 논은 벼 생산기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밭작물도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야흐로 논과 밭작물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밭작물이었던 콩이 논에 심기는 세상, 시대에 따라 논의 기능은 점점 확대되고 변화해간다. 하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것은 우리 삶 속의 스며든 논의 소중함이다. 산소가 늘 곁에 존재하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듯, 우리의 땅인 논과 밭도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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