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이탈리아 예산 희비극(喜悲劇)

입력 2018-1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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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지난주 그리스 남서부 지방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탈리아 나폴리까지 진동이 전달되었다고 한다. 두 나라에 영향을 미친 지진처럼 7년여 전 그리스와 유로화를 뒤흔들었던 재정위기의 망령이 다시 이탈리아에 나타나 이미 불안한 세계경제를 덮은 암운을 더 짙게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국내외 주식시장 추가 폭락 등 금융시장 불안이 심각해질 것이다. 아울러 이탈리아 상황은 경제의 민간부문이 쪼그라들며 정부 예산과 공공부문 ‘외발자전거’에 의존하는 형국인 우리에게 의미심장하다.

6월 1일자 본 칼럼에서 다루었듯이 지난여름 이탈리아에서는 극단적 ‘적폐 타파’를 주창한 좌파 ‘오성(五星)운동’과 ‘이탈리아 우선’을 기치로 내세운 우파 정당 ‘동맹’의 희한한 오월동주(吳越同舟)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그런데 최근 유럽연합(EU)이 이 정부의 첫 예산안을 퇴짜 놓으며 문제가 불거졌다. EU는 GDP 대비 재정적자를 2.4%로 잡은 예산안이 이전 정부가 국채 감축을 위해 약속했던 것에 비해 너무 크다며 수정안을 요구했다.

이는 ‘오성’의 선거 공약인 기본소득 지급 등 복지 지출의 증대와 ‘동맹’의 공약인 감세(減稅)를 동시에 담아내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지출을 늘리는 동시에 세수를 줄여서 경제 성장을 이루면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좀 황당한 발상이지만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임금을 높여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정책 발상에 비해서는 더 논리적일지 모른다.

이탈리아도 생경한 포퓰리즘 정책을 실험할 만큼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다. 오랫동안 방만한 나라 살림으로 국채의 규모가 GDP 대비 130%를 넘고 있다. 2011년 그리스 재정위기의 불똥이 경제 규모가 7배 더 큰 이탈리아로 번져 세계경제의 안정과 유로화의 존속을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EU뿐만 아니라 IMF까지 동원돼 그리스 위기를 봉합했다.

그 이후 EU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재정을 유로화 출범 당시의 관련 조약에 비추어 더 철저히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탈리아의 국가 채무는 조약이 정한 GDP 대비 60% 상한의 두 배 이상이다. 2011년 이후 이탈리아 정부는 국가 채무 감축을 위해 매년 적자를 낮추며 약속을 이행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새 정부가 기존 약속을 파기하는 예산안을 제출하자 EU는 역사상 처음으로 회원국의 예산안 수정을 요구했다. 3주의 시한이 지나면 30억 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하자 이탈리아 정치인은 “그럴 경우 동전으로 납부하겠다”고 되받아쳤다.

나라 살림에 대한 평가는 기채(起債) 비용과 직결된다. 우량국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5%를 하회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탈리아의 금리는 올해 초까지 2% 수준에 머물다 총선 직후인 6월 3%로 급등했다. 최근엔 예산 문제까지 부각되며 3.5%를 넘어서 연립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더 악화해 국채 투매가 발생하면 국제금융 시장의 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국채의 원리금은 세금으로 갚기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 모두가 추가 부담을 져야한다. 결국 정부의 선심이 공짜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재정 상황은 양호한 편이지만 매우 빠른 고령화, 인구 감소, 경제 활력 위축 등 향후 추세에 영향을 미칠 여건이 1990년대 이후 일본과 닮았다. 일본은 20년 전 GDP 대비 국가 부채가 100%를 하회하며 매우 우량했으나 현재 200%를 상회하며 OECD 회원국 중 최악이다. 경제 부진으로 세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여러 번 재정지출 증대를 통한 경기 부양 노력이 무산돼 일본의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져 현재의 상황에 다달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 일자리 확대 등 고정적 정부 지출이 증가하고, 의료분야를 포함한 고령 인구 지원 부담의 추세적 증가로 향후 재정 악화가 예견된다. 여기에 저성장이 고착화하면 국가 부채 증가가 불가피하다. 20년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5년 임기의 정부가 네 번만 바뀌면 도래할 시점이다. 더 통 큰 선심을 약속하는 정부가 나올 개연성이 높으니 ‘이탈리아의 희비극(tragicomedy)’이 남의 일이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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