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해식 북한금융연구센터장 “북한 금융은 ‘하이브리드’…동반성장할 수 있어”

입력 2018-10-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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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결핍이 시장경제 싹 틔워…국제기금 지원 기반 다진 뒤 南 주도 투·융자 진행 바람직

▲박해식 북한금융연구센터장은 10일 이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금융 시스템에 대해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존속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 경제 체제의 요소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댜”며 “모든 것이 확실치 않은 상황이지만 남과 북의 금융이 공동으로 성장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북한의 금융은 한마디로 하이브리드(잡종)입니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존속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 경제 체제의 요소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박해식(55) 북한금융연구센터장은 10일 서울 중구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현재 북한 금융 시장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기자와 만난 그는 한 손에 들고 온 두꺼운 종이뭉치를 책상에 내려놓고는 안경을 고쳐잡았다. 지난달 집필한 보고서 ‘북한의 경제 개발을 위한 금융 활용 방안’이다. 113쪽에 달하는 두께다.

박 센터장에게도 북한은 ‘불확실성’ 그 자체다. 하나부터 열까지 북한을 둘러싼 모든 것이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남과 북의 금융이 공동으로 성장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내비치며 말을 이어갔다.

◇ “북한 금융은 변모 중… 사금융 싹트고 있어” =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일원적인 은행 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금융 관련 모든 업무는 오로지 중앙은행을 통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국가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모든 경제를 관리하는 ‘계획 경제’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특히 북한의 중앙은행은 자금 공급, 화폐 유통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상업은행이 담당하는 신용까지 담당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박 센터장은 “최근 들어 북한의 재정적인 상황이 나빠지면서 예전처럼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공급하기 어려워졌다”며 “중앙은행의 자금 공급 기능이 축소하는 것과 맞물려 사금융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재정적인 결핍이 자연스럽게 시장 경제 체제의 싹을 틔우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북한은 경제 개발 자금 충당을 위해 내외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외자 유치를 위해 정책금융기관 설립을 시도하고, 특수 경제 지대의 설치를 확대해 왔다. 특히 상업은행법을 만드는 등 사금융을 양성화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난다. 하지만 아직 상업은행은 설립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센터장은 “북한은 상업은행의 역할을 고리대금업자라고 할 수 있는 ‘돈주’들이 하고 있다”며 “이들은 현재 약 60%에 달하는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있고, 그 규모는 30%라는 정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북한의 변화는 옛 공산권 국가들이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던 과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박 센터장은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는 시발점이 재정적인 위기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면서도 “대부분은 정권 붕괴가 결정적이었는데, 북한의 경우에는 종전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변화가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우리 주도하에 국제사회 공조 이끌어야” = 정체와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북한, 종잡을 수 없는 미래를 앞둔 북한의 금융에서 우리 정부와 금융 산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 센터장이 북한 금융 시스템 구축에 남한 정부가 성공적이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잇따라 강조한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과 투자를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하면서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투자의 방향을 최대한 북한의 수용 가능성 측면에 맞춰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대북 투자에는 정책적인 투·융자와 민간 차원에서의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간 투자를 위해서는 정책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북한이 경제 개발을 위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만큼 우리는 대북 투·융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도 “국제사회와의 협력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이 이처럼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조한 것은 명분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전면으로 나서서 대북 투·융자를 하는 것은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국내의 여론 등도 고려해서 북한에 대한 투자가 어느 정도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을 때 들어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우선 국제기금의 지원으로 열악한 경제적인 기반을 다진 뒤, 우리가 주도하는 기금으로 투·융자를 진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부동산 신탁 등으로 민간 자금 유치를 유도하는 것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만약 남북경협의 진척과 더불어 국내 금융사의 북한 진출 물꼬가 터지면 그 출발점은 은행일 것이라고 박 센터장은 예측했다. 현재 북한의 금융 시스템이 은행 시스템 위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현재 국내 은행 시장은 포화 상태인데, 북한에 진출하게 되면 2500만 명의 새로운 금융 소비자를 만나게 된다”며 “남북 관계가 잘 진행된다면 우리나라 금융 산업에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험과 저축은행, 카드 등 2금융권에 대해서는 “현재 관련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북한의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진 뒤에야 관련 수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부족한 정보가 애로사항… 중국·베트남 사례와 비교 연구 계획” = 북한금융연구센터는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 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자 5월에 출범했다. 종전 한국금융연구원 국제금융연구실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하던 북한 연구를 별도 조직을 신설해 전담하게 한 것이다. 그만큼 남북 경제협력 등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높아진 연구를 집중적으로 체계화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별도 조직이 만들어졌다.

박 센터장은 국제금융연구실장과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국제금융 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필요할 때마다 센터 업무를 지원하는 식이다. 북한의 금융. 듣기만 해도 난해한 주제를 연구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역시 정보의 부족이었다.

박 센터장은 “아무래도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면서 “국내외 문헌을 주로 참고하고, 북한 전문가들과의 세미나를 통해 정보를 집적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연구 방향을 묻자 박 센터장은 “북한이 현재 시장 개발을 할 의지가 강한데, 앞으로 북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살필 예정”이라며 “특히 비슷한 사례인 베트남과 중국의 금융 시장 움직임을 보고 북한 사례에 적용해 시사점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센터장은 “북한금융연구센터의 장으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남북의 공동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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