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경제가 이렇게까지 어려워지는 데는 여러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현 정부는 2015년까지 8년간 집권했던 지난 정부의 ‘적폐’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기업을 국유화하고, 다양한 분야에 통 큰 보조금을 지급하고, 정부 기구 및 공무원 늘리기 등 대중 영합적 정책을 펼친 지난 정부 때문에 재정이 악화한 가운데 주요 수출품의 가격이 하락하자 외화 부채를 갚을 능력이 고갈되며 위기가 닥쳤다. 1950년대 처음 집권했던 후안 도밍고 페론 정부를 필두로 남미 포퓰리즘 정치의 원조(元祖)국이며, 그동안 잦은 외환위기로 경제학 교과서에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곳이어서 그리 놀랄 만한 소식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곳곳에서 주가와 환율이 연초에 비해 수십 퍼센트나 급락하고 있다는 어두운 소식이 전해진다. 터키, 남아공에 이어 인도네시아도 우려스러운 신흥국으로 거명되고 있다. 선진국 중 이탈리아도 이 반갑지 않은 명단에 얼마 전 이름을 올렸다. 신흥국 불안 고조에는 외부의 영향과 각국의 국내 사정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터키도 아르헨티나와 비슷하게 정치적 이유로 경제가 방만해진 경우이다. 전문가들은 “2003년 총리에 오른 이후 개헌을 통해 현재 대통령으로서 장기 집권체제를 구축한 에르도안이 민심을 얻기 위해 외자를 도입해 대형 사업과 선심성 정책을 펼쳐오면서 경제 악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외부의 비판에 대해서는 서방 국가들의 외세 간섭이라고 열을 올리며 오히려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현 포퓰리즘 정권에 대해서는 6월 1일자 본 칼럼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현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는 동시에 세수를 줄이는 정책을 제안하자 이탈리아 국채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며 금융시장이 잠시 경기(驚氣)를 일으켰다.
지금 부각된 신흥국 금융위기 우려의 근저에는 2008년 이후 신흥국으로의 자금 쏠림과 최근 미국의 금리 인상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금융기구(IIF)의 자료에 따르면 21개 주요 신흥국의 달러화 부채는 2008년 2조8000억 달러에서 최근 6조400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선진국들이 2008년 위기 이후 거의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풀어 이자율이 0%에 근접하자 조금이라도 수익을 얻기 위해 신흥국으로 돈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이런 자금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이제 역류(逆流)하기 시작했다.
경제의 활황세가 견조(堅調)해지며 미국의 연지준은 금리를 현 수준보다 추세적으로 더 높은 궤도로 올리기 위한 행보, 즉 금리 정상화 절차를 시작했다. 남은 일은 ‘금리가 얼마나 빨리 오를까’이다. 신흥국의 자금 이탈이 처음에는 선별적으로 시작할지 모르나 투자자 사이에 막차를 놓칠 수 있다는 공포가 전염되면 무차별적인 무리행위(herd behavior)로 변질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의 펀더멘털이 좋다”라는 항변은 공허한 외침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악화로 무역전쟁까지 전개된다면 우리처럼 무역이 중요한 나라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모두에서 동시에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의 펀더멘털이 건실한지, 위기감이 고조된 나라들과 비교해 고쳐야 할 점은 없는지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우리와 미국의 금리차도 너무 큰 것은 아닌지 신중히 살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