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은 왜 '해리'여야 했나

입력 2018-08-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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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공지영(55) 씨가 최근 5년 여의 취재 끝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작 '해리'를 펴냈다. 등단 30주년을 맞이한 공 씨의 12번째 장편소설인 만큼 출간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해리'는 '고등어',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사회 문제에 긴밀한 관심을 두고 소설로 형상화해온 작가가 또 다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내는 작품이다. 두 권으로 이뤄져 책을 펼치기 전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한 듯하지만, 책을 한 번 펼치면 다시 책을 접기 쉽지 않다는 평이 이어진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은 주인공 '한이나'가 고향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어떤 사건과 피해자들을 만나게 되고, 그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악의 실체를 맞닥뜨린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천주교 신부 '백진우'는 입으로는 온갖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인물이지만, 알고 보면 어린 소녀와 젊은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장애인 봉사 단체를 내세워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 자신의 부를 축적한다.

그의 옆에 있는 여성 '이해리'는 불우한 성장 과정을 내세워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시절부터 강박적으로 자신의 외모에 집착하는데, 이 역시 그에겐 수단일 뿐이다. 장애인 봉사 단체를 운영하는 이 인물은 뒤로는 사람들에게 '봉침'을 놓는 등 기이한 수법으로 약점을 잡아 돈을 갈취한다.

작가는 등장 인물의 이중성을 '해리성(解離性) 인격 장애'와 연결짓는다. 제목도 여기서 가져왔다. 책의 첫머리에 이 용어를 적어놓고 '각기 다른 정체감을 지닌 인격이 한 사람 안에 둘 이상 존재하여 행동을 지배하는 증상. (후략)'으로 설명한다.

책은 선(善)인 줄로만 알았던 일상들이 이면에 품고 있는 악(惡)을 추적한다. 그러면서 겉으로 선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추악한 욕망으로 얼룩진 악이 잠재돼 있을지 모른다고 끊임없이 경고한다.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부정(不正) 앞에서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 무엇인지, 그 희망을 일궈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깨어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실화가 바탕이 됐다. 보호시설에서 9년간 309명이 사망했음에도 이를 운영하던 가톨릭 대구대교구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대구 희망원 사건'이 얼개를 이룬다. 작가는 자신이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던 '전주 봉침 여목사 사건'을 치르면서 작품을 위한 깊은 취재를 시작했다. 책은 '광주인화학교'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던 소설 '도가니' 역시 연상시킨다.

'도가니'의 배경이 된 안개의 도시 '무진'이 주 무대로 등장한다. 짙은 안개는 도시에 씌어진 거대한 부정의 깊이를 상징한다. 공 씨는 최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예전에 '도가니'가 싸움의 과정을 다뤘다면 이번 소설은 약자들을 괴롭히는 위선과 거짓말을 탐구했다"며 "이왕이면 내 소설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지구가 1cm라도 좀 더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공 씨는 인터뷰집 '괜찮다, 다 괜찮다'에서 "저는 가톨릭을 믿는 게 아니고 하느님을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인으로서 금기인 종교계의 부패를 거침없이 고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공 씨는 책 말미에 "다른 모든 소설이 그렇듯 모두 허구이며, 여기에서 당신이 어떤 이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당신의 사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백진우와 이해리 모두 페이스북을 이용해 자신의 선하고 가련한 이미지를 만들어간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공 씨는 "이중적인 인격의 해리성 인격장애에 비유될 정도로 표리부동한 인간들의 행태를 한눈에 드러내기 위해 소셜미디어 중 하나인 페이스북의 이미지를 소설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명박근혜'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세월호를 애도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장사할 수 있는 토양을 만난 것이다"와 같은 구절도 인상 깊다. '이명박근혜'가 수차례 등장하고, 주인공의 채팅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박근혜아웃'인 것도 작가의 메시지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독약을 먹고 있어요. 그게 독약인 줄도 모르고, 안 죽네, 맛있네, 이러고 있다고요. 그들이 쥐약이 든 빵을 계속 먹고 있는데, 왜 화가 나요? 안타깝지요, 그 사람들이요. (2권, 169쪽)"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장편소설 '해리'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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