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섭씨 40도를 넘은 곳도 있다. 언론은 매일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여름이면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철새가 오가는 철엔 조류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행락철엔 바가지 요금이 기승을 부린다.
이처럼 기승을 부린다는 말은 날씨든 전염병이든 사회현상이든 어떤 경우에도 다 사용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학생들을 상대로 ‘기승’의 뜻을 물었더니 그 뜻을 정확히 아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기승은 ‘氣勝’이라고 쓰고 각 글자는 ‘기운 기’, ‘이길 승’이라고 훈독한다. 승리(勝利·利:이로울 리, 이길 리), 승자(勝者) 등에서처럼 ‘이기다’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하는 ‘勝’은 뜻이 확장되어 ‘뛰어나다’, ‘넘치다’라는 의미로도 쓴다. 승경(勝景)은 ‘뛰어난 경치’라는 뜻이고, 명승지(名勝地)는 ‘이름이 뛰어나게 널리 알려진 곳’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氣勝’은 “기운이 넘치고 뛰어나서 누그러들지 않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명사를 동사로 전환해주는 역할을 하는 동사인 ‘~부리다’는 “행동이나 성질 따위를 계속 드러내거나 보이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 ‘고집부리다’, ‘말썽부리다’ 등의 ‘~부리다’가 그런 예이다. 그러므로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기운이 넘치고 뛰어나서 누그러들지 않는 상태를 계속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벌써 며칠째인지 헤아리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위의 기를 꺾을 수 있는 것은 비인데 매일같이 땡볕만 내리쬘 뿐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상대적으로 사람이나 가축, 밭작물 등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기가 죽은 나머지 가축은 폐사(斃死:쓰러져 죽음·斃:쓰러질 폐)하고 밭작물은 고사(枯死:말라 죽음·枯:마를 고)하고 있다. 더위에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정부와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