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인생경영의 세 가지 자산

입력 2018-05-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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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5월에는 각종 날이 몰려 있다. 자연히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반추케 된다. 나보다 젊은이에겐 어른의 자격에 자성하게 되고, 어르신에겐 선행학습하게도 된다.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이라는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아래로 떨어질수록 인생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며 나이 듦을 찬양했다.

늙을 로(老)는 긴 머리칼과 함께 손에 지팡이를 짚은 모습의 상형이다. 생각할 고(考)와 늙을 로(老) 두 글자는 기원이 같다. 노인은 세상풍파를 겪은 사람으로 어지간한 세상일엔 달통하여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와 대비해 어리다, 점잖다란 말을 생각해보자. 어리다의 어원은 어리석다이고, 점잖다의 어원은 젊지 않다이다. ‘늙다’엔 ‘풋익고 설익은’ 것에 대비되는 무르익음, 원숙한 발효 상태라는 긍정적 뜻이 담겨 있다.

장(長)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의 모습이다. 오랜 세월 겪은 다양한 경험은 중시되었기에 이들이 사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조직의 우두머리에 장(長)을 넣는 것도 그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자켄’은 턱수염, 장로를 함께 뜻한다. 장로의 턱에는 긴 수염이 나 있고 나이 먹은 이들은 권위의 대상이었다. 늙지 않으면 인생의 고상함도, 품위도, 권위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의 노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도서관이 하나 없어진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전통사회에서 나이란 생물학적 나이를 떠나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 노련함이란 뜻과 같이 쓰였다. 세월에 닳는 것이 아니고, 닦였음을, 낡아진 것이 아니라 정련됐음을 뜻하는 존경의 의미였다.

노마지지(老馬之智)란 말도 그런 사고의 반영이다. 춘추시대 제환공이 재상 관중과 함께 고죽국 정벌에 나섰다. 전쟁이 길어져 혹한 속에 귀국해야 했다. 길을 잃고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관중이 “이런 때 나이 든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행군 경험이 많은 말을 몇 마리 풀어 놓았다. 늙은 말들은 어느 쪽으로 가면 길이 나오는지 알 거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들을 따라갔더니 과연 길이 나왔고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었다.

요즘 늙음은 물리적 낡음으로 직하해 세상의 중심은커녕 변방에 서기도 힘들다. 소장(小壯)의 반대가 노장이 아니라 노추(老醜)가 될 때 추레하고 초라하다. 소설 ‘은교’에서 노시인 이적요는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무기력한 아우성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인생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 것인가. 명실공히 어른으로서 세월의 퇴적이 아닌 경륜의 축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논어의 학이편 첫 구절 3호(乎)에서 세 가지 자산을 찾아본다. 첫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습자산이다. 멈추지 않고 공부하려는 호기심 어린 태도이다. 성공이 아닌 성숙을 위한 학습은 생각을 유연하게 한다. 둘째,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관계자산이다. 취향, 의향, 지향을 같이하며 동고동락할 벗을 갖는 것이다. 세 가지를 한꺼번에 공유할 수 있는 친구는 힘들더라도 범주별로 가지기만 해도 성숙한 인생이다. 셋째,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끙끙 앓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 마음자산이다. 세상이 (예전처럼) 대우하지 않더라도 몽니를 부리지 않는 데서 진정한 어른의 권위와 품위와 권위는 우러난다.

어른의 자격은 세월이 절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 관계, 마음자산의 관리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다. 어른의 기능은 줄어들지라도 어른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불려 나가야 할 인생 자산이다. 세월의 모래알이 떨어질수록 인생을 선명하게 볼 수 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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