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온으로 인하여 봄꽃 철이 많이 짧아졌다. 예전엔 춘서(春序)라 해서 봄꽃도 피는 순서가 있었다. 매화가 피고, 이어서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그 뒤를 이어 목련이 피고 벚꽃이 피고…. 이렇게 차례로 꽃을 피우다 보면 벚꽃은 일러도 4월 중순이나 되어야 만개하곤 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런 순서가 없이 봄이 왔다 싶으면 매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이 거의 차이를 두지 않고 한꺼번에 다 피는 것 같다. 그리고 철쭉이 필 때쯤이면 이미 날씨가 초여름처럼 더워지면서 꽃이 제 색깔을 제대로 뽐내 보지도 못한 채 고온의 공기와 따가운 햇볕으로 인해 마치 마르듯이 금세 시들어 버린다. 게다가 미세먼지마저 극성을 부려 외출을 삼가다 보니 꽃을 구경하는 여유를 즐길 수가 없다. 꽃잎을 따서 화전(花煎)을 부쳐 먹던 옛날이 그립다. 화전놀이는 이제 민요의 가사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 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봄은 청춘 남녀들이 사랑을 하는 철이다. 설레고 애타는 마음으로 밤새 사랑의 편지를 써놓고서도 용기를 내지 못해 부치지도 건네지도 못한 채 책상 서랍에 비밀스럽게 넣어 놓고 가슴 졸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사랑의 편지를 ‘꽃 편지’라고 불렀다. ‘꽃 편지’라고 부르기 전, 한자어로는 ‘화전(花箋)’이라고 했다. ‘箋’은 ‘찌지 전’이라고 훈독하는데, ‘찌지’란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표하기 위하여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을 말한다.
원래는 대나무를 얇게 깎아 그 위에 글씨를 써서 엮은 ‘죽간(竹簡)’에 보충 설명으로 ‘주(註)’를 달아야 할 경우에 ‘작은(잔)’ ‘대나무(竹)’ 조각을 덧붙여 달았기 때문에 잔과 竹을 합친 ‘箋’이라는 글자가 생겨났다. 후에 ‘箋’은 작은 종이에 쓰는 편지나 그런 편지를 쓰는 종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花箋을 주고받던 청춘남녀가 상큼한 기분으로 花煎놀이를 가는 세상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