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거짓은 왜 복원력이 센가

입력 2018-04-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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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한 가지 거짓말에는 다른 거짓말 스무 개(J.스위프트) 또는 일곱 개(M.루터)가 필요하다. 거짓말에 관한 금언과 속담은 대부분 이런 경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좀 생소한 영국의 목사 시인 조지 크래브(George Crabbe·1754~1832)는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거짓말은 땅 위의 큰 물고기와 같다. 펄떡거리고 뛰고 큰 법석을 떨겠지만 결코 너를 해치지는 못한다. 그저 가만있기만 하면 저절로 죽는다.”

정말 가만있기만 하면 되나. 그 물고기가 펄떡거리고 뛰는 동안 빚어질 혼란과, 다른 사람들의 피해는 어떡하고? 하늘의 섭리와 정의의 승리를 믿고, 세월호의 아이들처럼 가만있으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거대한 거짓말의 그물에 휩싸여 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동양의 도덕관이지만, 그물 자체가 부실해 보일 만큼 거짓은 잘도 그물을 빠져나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수하들을 생각해보자. 세월호 사고가 난 날 이후의 청와대는 거짓과 조작의 컨트롤타워요 총본산이었다. 국회에 나와 4·16 그날을 증언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이제 생각해보니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문제행동보다 더 나쁜 건 그 행동을 엄폐하고 부인하는 거짓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결국 사임하게 된 것은 거짓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각종 비리나 사기행위만큼 그 이후의 행동과 해명의 거짓 여부를 중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제를 일으킨 개인들은 부인부터 하고 본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다가 결국 포기한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성추행 사실을 잡아떼며 무고를 주장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나열할 때부터 진실성이 의심스러웠다. 양승동 KBS 사장 후보자는 세월호 사고 당일 노래방을 간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가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날 저녁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날 노래방에 가면 안 된다는 규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숨기려고 한 게 오히려 더 문제가 된 경우다.

거짓말은 결국 거짓말에 의해 드러난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경우에 처하면 이런 세상과 삶의 이치로부터 눈을 돌리게 된다. ‘회남자(淮南子)’라는 중국 고전에는 “흔적을 없애려고 눈 속으로 달린다”는 말이 나온다. 꿩이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숨는답시고 머리만 처박은 채 꼬리를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 행동이다.

거짓말이 먹고사는 것은 용서와 묵인이다. 미투운동 이후 힘을 얻은 사회적 징벌체계, 이른바 ‘원 스트라이크 아웃’의 원칙으로 축출해야 한다. 4월 1일은 만우절이었다. 해마다 경찰을 골탕 먹이던 112 허위신고가 올해에는 부쩍 줄었다고 한다. 허위·악성 신고를 할 경우 엄정 대응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한 결과다. 서울의 소방서는 만우절에 장난 전화로 출동한 건수가 한 건도 없었다. “마음에 불이 났다”는 장난전화 한 통이 전부였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면 패망한다는 걸 사회 전체가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잠언 20장 17절)는 걸 알게 해야 한다. 정직하고 한결같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중용해야 한다.

특히 거짓꾼으로 거짓꾼을 잡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저서·논문 표절이나 입시부정, 학력 위조와 같은 범죄행위로 매장되거나 잠적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되살아나 온갖 정의롭고 아름다운 발언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 이들이 매스컴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는 거짓이 잘 잊히고 거짓꾼들의 회생과 복원력이 여전히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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