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유리창

입력 2018-02-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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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인 보갑 영업부 팀장
입춘(立春)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겨울날이었다. 밖에서 조금만 걸어도 금세 손등이 푸르뎅뎅해질 만큼 도로 추워졌다. 그날 출근길의 해는 유난히 밝아 눈이 아려 왔다. 둥그스름한 것이 꽤나 먹음직스러웠다.

세상엔 많은 유리창이 있다. 뜨끈한 아침 햇살이 비치는 침실 창, 남녀노소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버스 유리창, 사람들의 피곤함을 듬뿍 담고 있는 건물 전면 유리창, 그리고 각각의 열정을 흡수하는 회사 유리창. 나는 주로 후자인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회사에서 바라보는 창 너머 달은 여러 감정을 품는다. 진득한 피곤함은 푸른빛을 띠고, 밝게 빛나는 전등은 노란빛을 내며, 그 밑에서 타이핑하는 이들의 눈빛은 달의 이면처럼 거뭇하다.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유리창은 달과 같다.

20대 초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 나는 전열등 밑에서 뜨끈한 기운을 잔뜩 머금은 쇼윈도와 같았다. 어릴 적 인형의 집을 바라보던 여자애처럼 설레게 만들었다. 항상 가슴이 설렜고, 두 눈엔 생기가 돌았으며, 열정이 불을 지폈다.

20대 중반. 항상 반짝이던 쇼윈도에 눅눅한 때가 끼었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모서리엔 자잘한 실금이 끼었고,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부조리를 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까, 같은 공간에서 서로 이빨을 숨기는 모습들.

20대 후반. 눈을 감았다 뜨니 쇼윈도 안에 내가 있었다.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다. 잔뜩 높인 전열등 빛은 유리창을 달궈 낸다. 금방이라고 깨질 것 같다. 그 너머에는 어렸을 적 동경의 눈으로 안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서 있다.

눈을 감았다 뜬다.

나는 또다시 버스 유리창에 기대어 있다.

이 커브만 지나면 회사 빌딩이 보일 것이다. 햇빛에 눈이 시려 눈꺼풀이 무겁다. 피곤에 찌든 채 또다시 수많은 유리창을 향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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