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부 차장
어느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고충이다. 최근 바이오주를 필두로 비이성적인 투자집단이 생겨나고 있다. 자칫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가는 말들이 들리면 떼로 몰려가 해코지를 하기 일쑤이다.
지난해 말 국내 자산운용사 가운데 한 곳이 트래픽 초과로 갑자기 먹통이 된 적이 있었다. 금융사들을 상대로 돈을 노린 해커들의 공격인 줄 알았으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황당하게도 트래픽 초과의 주요 원인은 한 바이오기업의 주주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회사가 특정 바이오기업을 공매도했다는 루머가 돌자, 해당 기업의 강성 주주들이 동시에 대거 몰려들면서 사이트가 마비된 것이다.
증권사뿐만이 아니다. 기자도 같은 경험을 했다.
바이오 기업인 A사의 대표가 주가가 오른 사이 일부 지분을 매도했다는 공시 해석 기사를 내놓자 이 회사 주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날 이메일 폭격을 받아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이들의 항의는 대부분 팩트에 근거하지 않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만이 난무했다. 언뜻 보아서는 그냥 화풀이 대상이 필요한 듯 보였다.
가장 심한 욕설을 한 투자자에게 메일을 보내 “팩트가 잘못됐다면 기사를 수정할 테니, 욕만 하지 마시고 틀린 부분을 지적해 달라”라고 요청했다. 이 투자자는 그제야 이성을 차린 듯 보였다. 돌아온 답변 메일에는 “죄송하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들의 행동에 이해는 간다. 그들이 투자한 회사에 그만한 긍정적인 확신이 없다면 투자를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너무 편협한 마음으로 주변의 변화와 흐름을 무시한 채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맞는 정보와 자료만 보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투자의 당위성에 부합하는 주변의 의견에만 귀를 열고, 우려스럽거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귀를 닫는 경향이 커졌다. 특히 일부는 맹신에 가까운 믿음이 생기면서 우려 섞인 행동들이 돌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상화폐(암호화폐)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비트코인이나 리플,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붐이 일고 있다.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얘기가 주변에 난무하고, 실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계좌 인증사진도 인터넷에 많이 나돌고 있다.
하지만 수익 난 사람들만 있을까? 아닐 것이다. 분명 원치 않게 손실이 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든 투자자는 투자하는 순간부터 낙관론자가 된다’라는 격언이 생각난다. 투자하면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이런 투자가 꼭 실패한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만큼 투자에 대한 위험성은 커질 것이다.
진정한 가치투자는 시장의 모든 요소를 꼼꼼히 챙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귀를 닫는 것보다는 충분히 열고 시장의 변화와 위험 요소를 항상 챙기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