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억제책 내놓으면 되레 수도권ㆍ지방만 피해
『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올해도 서울 강남권 아파트 가격 동향은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6차례에 걸쳐 다양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으나 강남 집값은 좀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시장은 오히려 갈수록 더 달아오르는 형국이다. 한국감정원이 매주 조사하는 아파트 가격 동향에서도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이른바 강남 4구의 주간 단위 아파트값 상승률은 이달 첫째 주 0.69%에서 둘째 주(8일) 0.65%, 셋째 주(15일) 0.88%로 계속 높아지다가 넷째주에 0.79%로 좀 진정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지난달의 주간 평균 상승률이 0.39%인 점을 감안하면 올 들어 오름 폭이 더욱 커지는 추세다.
강남권 아파트값 오름세는 서울 전체 평균 상승폭의 2배를 웃돈다. 물론 구 단위로 따지면 양천·성동·광진구의 상승세도 가파른 편이지만 주택시장 전반의 흐름은 강남권이 선도하는 양상이다. 강남권 중에서도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활황세가 두드러진다. 규제가 대폭 강화됐는데도 상승폭은 자꾸 올라가는 분위기다.
송파구 잠실 5단지의 전용면적 76.5㎡ 형 저층 시세는 지난달 1일 17억 1000만 원에서 이달 1일 17억 3000만 원으로 2000만 원 상승했다가 15일 조사에서는 18억 원 대로 뛰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전용 108.4㎡ 형은 한 달 사이 4억 원이 올라 24억 원을 호가한다. 또 대치동 은마아파트 76.7㎡ 형은 지난달 1일 13억 9000만 원에서 현재 15억 원 대를 기록하고 있다.
가격이 뛴 곳은 이들 단지뿐만 아니다. 재건축 기미가 있는 곳은 다 상승 모드다. 송파구 아파트는 셋째 주에 1.39%가 올랐고 서초·강남구도 각각 0.81%, 0.75% 상승했다. 넷째 주에는 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강남구(0.93%)와 강동구(0.76%)는 전주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시장 열기가 자꾸 달아오는 느낌이다. 가격 상승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구입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아파트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강남 4구 아파트 총 매매량은 지난해 10월 840건에서 11월 1604건으로 증가했다가 12월에는 2301건으로 증가세가 강해졌다. 올해는 24일 현재 1905건으로 이달 말까지 치면 전월 실적을 훌쩍 넘어설 것 같다. 하루 평균 거래량을 봐도 지난해 10월 27건에서 11월 53.5건, 12월 74.2건, 올해 1월 현재 79.4건으로 갈수록 불어나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한 채에 10억~20억 원 대에 달하는 비싼 아파트를 누가 매입할까. 각종 규제로 인해 섣불리 덤볐다간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있는데도 말이다.
먼저 아파트 시장을 옥죄는 재건축 규제 내용부터 살펴보자. 조합설립 인가가 난 단지는 조합원 자격을 양도할 수 없다. 무슨 소리냐 하면 조합원 아파트를 구입하더라고 새로 짓는 아파트는 배당되지 않는다. 보유 아파트는 가치를 계산해 현금으로 청산해 줄 뿐이다. 다만 10년 보유, 5년 거주 조건을 갖춘 장기보유자의 아파트를 살 경우 기존 조합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조합설립이 안된 아파트를 사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런 곳은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가 적용돼 개발이익이 확 줄게 된다. 지난해 말까지 관리처분 인가 서류를 접수하지 않은 곳은 모두 초과이익 환수 대상이다. 개발사업으로 생기는 일정 규모 이상의 이익에 대해 최고 50%의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초과이익 환수 대상 단지는 개발 이익은 주는 것은 물론 개발비 부족 분을 메꾸기 위해 추가로 내야하는 조합원 분담금이 불어나 사업성이 떨어지는 경우 생긴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강남 4구 14개 단지를 대상으로 이익 환수금을 추정한 결과 조합원 1인당 평균 4억 3900만 원에 달했다. 부담금이 가장 많은 단지는 8억 4000만 원에 달하고 제일 적은 곳은 1억 6000만 원으로 조사됐다. 국토부가 내놓은 수치는 단지 추정치일 뿐 실제와 차이가 나겠지만 대충의 구도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호다.
재건축 이익 환수 규모가 이정도이면 사업의 메리트가 대폭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전에는 큰 평수를 갖고 있는 조합원의 경우 작은 평수 2채를 분양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무조건 1가구만 주어진다. 차액은 다 현금으로 청산된다. 조합원 자격으로 재건축 아파트를 배당받았다 해도 재당첨 제한에 걸린다. 5년간 다른 아파트 청약자격이 없어진다. 이같은 촘촘한 규제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야단이다. 희소가치 때문인 듯 싶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큰 폭의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아파트 공급원이다. 강남권에는 신도시를 건설할 만한 대지도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무주택자 등을 위한 공공 주택 건설에 투입된다. 대단위 주택단지를 조성할 수 있는 땅이 없다 보니 재건축 아파트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강남권은 교통이나 교육 환경 등이 어느 곳보다 좋아 여건만 되면 다들 이주하려고 한다.
최근 한 매체가 지난달 강남 4구 내 아파트 구입자 주소지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강남권 주민이 59.6%이고 나머지는 강남권 외 서울 거주자 18.9%, 인천·경기 14.4%, 지방 7.1%로 나타났다. 이는 외지인이 40%를 넘는다는 소리다. 그만큼 강남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몰려드는 외지인이 많다는 얘기다.
강남권 주민도 넘쳐나는데 외지인까지 유입되면 아파트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외지인 유입을 막을 수도 없다. 강남 아파트값 잡기에 혈안인 정부는 수많은 외지인의 강남 유입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온갖 덫을 쳐 수요 창출을 억제해왔다. 강남권은 투기지구에다 투기 과열 지구, 청약 조정 대상 지역 등 이중 삼중으로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기준까지 만들었다. 4월부터는 조정 대상 지역 내의 다주택자는 현재 양도소득세 세율에다 2주택자는 10%, 3주택 이상은 20%의 가산세율이 더해진다. 여기다가 다주택자는 장기보유에 따른 특별공제 혜택도 사라진다. 양도세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도록 만들겠다는 심사다.
그것뿐만 아니다. 지금까지는 1가구 1주택자라도 2년 이상 보유만 하면 양도세가 면제됐으나 지난해 8월 3일 이후부터는 강남권 등이 포함된 조정대상지역의 주택은 2년 이상 거주를 해야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강남권 아파트도 당연히 해당된다. 물론 9억 원이 넘는 고가 주택은 양도세 면제 대상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강남권 아파트는 이래저래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강남권 아파트에 대한 대출 기준도 강화됐다. 무주택자라도 담보액의 40% 이하로 대출금이 정해진다. 다주택자는 30% 이하로 제한된다.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사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이렇게 규제 장치가 두터운데도 강남권 아파트의 인기도는 오히려 올라가는 형국이다. 일부 단지는 매물이 아예 없을 정도다. 구입 수요는 많은데 매물이 귀하니 집값은 더 뛴다. 최근 상승률이 커진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매물 기근 현상은 강남권 진입 수요자들의 가슴을 타게 만든다. 지금 집을 사지 못하면 영원히 강남 진입의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휩싸이는 모양이다.
여기다가 일부 부동산업소나 컨설팅업체들은 구입을 종용하는 분위기다. 수수료를 받기 위해서 그런지 몰라도 강남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매입을 부추긴다. 구입자가 많아지면 매물 회수 양상이 벌어진다. 집을 팔려고 했다가 구입 관련 전화가 여기저기서 걸려오면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내놓았던 매물을 다시 걷어들인다. 주택 투기가 극성을 부릴 때마다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강남권 아파트 시장은 투기판이라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강남 아파트를 선호하는 추세다.
강남권은 재건축 철거 등에 따른 이주 수요가 풍성해 강남 자체 수급상황을 따져도 공급이 모자란다. 여기다가 외지인까지 몰려오니 가격 상승은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주택 관련업 종사자들은 공급 확대만이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건축을 규제할 게 아니라 오히려 활성화해 공급을 대폭 늘릴 것을 요구한다. 얼핏 생각하면 맞는 소리 같다. 쏟아지는 공급 물량 앞에서는 장사도 힘을 못 쓴다지 않는가. 화성 동탄 2신도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출하돼 빈집이 즐비하다. 주택 가격도 분양가 이하로 떨어졌고 전세 등의 세입자 구하기도 힘들다. 이곳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은 손해가 막심하다.
강남권에도 엄청난 물량이 공급된다면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강남권에서의 공급 확대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과밀화된 강남권을 고밀도로 재건축할 경우 서울 자체의 경쟁력은 추락하게 된다. 일본 도쿄나 중국 베이징과의 경쟁에서 밀려 어쩌면 더 큰 경제적 손실이 생길 수 있다.
국내 문제도 심각해진다. 강남권을 고밀화해주면 다른 곳도 똑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 그럴 경우 그 많은 주택이 해소될지 의문이다. 설령 해결이 된다 해도 구입 수요는 서울 외곽 도시나 지방에서 흘러든다. 이는 다른 지역의 침체 또는 쇠퇴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구 감소 시대가 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강남권 해결을 위해 다른 지역을 다 죽이자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섣불리 재건축을 권장했다가는 오히려 분란만 키울지도 모른다. 개발 붐이 투기판으로 바뀌어 집값을 더 밀어 올릴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지금도 재건축 바람이 강남 집값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거세다.
그렇다면 대안이 없다는 소리인가. 현재로서는 뾰족한 묘책을 찾기 어렵다.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웬만한 규제 카드는 다 꺼냈다. 남은 것은 보유세를 얼마나 높이느냐 것과 재건축 연한을 대폭 늘리는 사안이 남아있다. 여기다가 서울권의 모든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 마음대로 분양가를 올릴 수 없도록 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이런 규제 그물을 쳐 놓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제 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자꾸 정부가 안달하는 모습을 보이면 투기세력은 오히려 날뛰는 법이다. 가격이 오르는 것에 민감해 할 필요가 없다. 오를만한 곳은 오르는 게 정상이다. 전국이 다 들썩이면 문제지만 국지적인 상승세는 국가 경제에도 바람직하다. 강남의 인기 아파트값이 3.3㎡당 1억 원이 된다 해도 호들갑을 떨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다.
요즘 장세는 강남 아파트값이 뛴다고 다른 곳까지 동반 상승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서울 외는 공급 과잉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방 곳곳에서 미분양 사태에다 집값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괜히 강남권 아파트값 잡는다고 덤볐다가 지방까지 다 망가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