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⑧ 최초의 광고모델 마크 트웨인

입력 2018-01-1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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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이달로 말할 것 같으면 투자에 특히 위험한 달이다. 다른 위험한 달로는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이 주식에 투자했다가 거금을 날리고 한 말이다.

 마크 트웨인이 살던 시기의 미국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모하는 중이었고 서부의 금광 발견, 남북전쟁까지 있던 격변의 시기였다. 마크 트웨인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인쇄공, 연사(演士), 여행기자, 미시시피 강을 다니는 증기선의 수로 안내인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마크 트웨인은 필명(筆名)인데 배가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는 2길 정도의 깊이를 뜻한다.

 그의 소설의 제목과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마크 트웨인은 모험심과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 1840년대 말 골드러시에 그 사업에 뛰어든 적이 있고, 인쇄공이었던 터라 관련 기계인 자동식자기 사업에 투자하여 전 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발명에도 관심이 있어 풀이 없이 스크랩할 수 있는 스크랩 북, 보드게임에 관한 발명 특허를 내기도 했다. 괴짜 발명가로 알려진 테슬라와도 친분이 있었고 말년에는 발명왕 에디슨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그를 알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작가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투자의 실패와 파산에서 그를 일어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 문학의 효시(嚆矢)라고 불리는 것도 글쓰기 덕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글을 쓰는 도구인 만년필은 어느 것 못지않게 특별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만년필 광고에 여러 번 등장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1892년 광고에서 마크 트웨인은 “하나의 Wirt 펜으로 수년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습니다. 두 개로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도 망하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했던 사람이라 광고 출연이 재정 압박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실제로 마크 트웨인의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출간된 때인 1876년과 1885년은 실용적인 만년필이 막 등장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나올 때였다. 1876년엔 지금의 샤프 펜슬을 닮은 스타이로그래픽 만년필이 등장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고 1885년은 실용적인 만년필의 시작인 워터맨 만년필이 광고를 막 시작한 때였다.

 조금 시간이 지난 1903년 광고에서는 마크 트웨인 특유의 재치를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만년필 내부에 한쪽이 막힌 고무 튜브를 달고 그것을 판으로 눌러 잉크를 넣을 수 있는 만년필이 등장하였는데, 그 전엔 스포이트로 잉크를 채웠다. 스포이트가 필요 없어 ‘셀프 필러 만년필’이라고 한다. 이 셀프 필러 만년필의 시대를 연 것이 콘클린이었고 마크 트웨인의 짧은 글이 있는 이 광고 역시 이 회사 것이었다.

 콘클린 만년필엔 약점이 하나 있었다. 몸통 중간에 초승달 모양의 고리가 있었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볼록 튀어 나와 눈에 거슬렸다. 마크 트웨인은 짧게 “그것을 책상에서 구르게 할 순 없어”라고 했다. 볼록 튀어나온 것 때문에 구르지 않아 책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만년필이 책상에서 떨어지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라 나는 동의한다. “그대 말이 맞아요!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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