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이 살던 시기의 미국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모하는 중이었고 서부의 금광 발견, 남북전쟁까지 있던 격변의 시기였다. 마크 트웨인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인쇄공, 연사(演士), 여행기자, 미시시피 강을 다니는 증기선의 수로 안내인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마크 트웨인은 필명(筆名)인데 배가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는 2길 정도의 깊이를 뜻한다.
그의 소설의 제목과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마크 트웨인은 모험심과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 1840년대 말 골드러시에 그 사업에 뛰어든 적이 있고, 인쇄공이었던 터라 관련 기계인 자동식자기 사업에 투자하여 전 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발명에도 관심이 있어 풀이 없이 스크랩할 수 있는 스크랩 북, 보드게임에 관한 발명 특허를 내기도 했다. 괴짜 발명가로 알려진 테슬라와도 친분이 있었고 말년에는 발명왕 에디슨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그를 알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작가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투자의 실패와 파산에서 그를 일어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 문학의 효시(嚆矢)라고 불리는 것도 글쓰기 덕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글을 쓰는 도구인 만년필은 어느 것 못지않게 특별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만년필 광고에 여러 번 등장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1892년 광고에서 마크 트웨인은 “하나의 Wirt 펜으로 수년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습니다. 두 개로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도 망하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했던 사람이라 광고 출연이 재정 압박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실제로 마크 트웨인의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출간된 때인 1876년과 1885년은 실용적인 만년필이 막 등장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나올 때였다. 1876년엔 지금의 샤프 펜슬을 닮은 스타이로그래픽 만년필이 등장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고 1885년은 실용적인 만년필의 시작인 워터맨 만년필이 광고를 막 시작한 때였다.
콘클린 만년필엔 약점이 하나 있었다. 몸통 중간에 초승달 모양의 고리가 있었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볼록 튀어 나와 눈에 거슬렸다. 마크 트웨인은 짧게 “그것을 책상에서 구르게 할 순 없어”라고 했다. 볼록 튀어나온 것 때문에 구르지 않아 책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만년필이 책상에서 떨어지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라 나는 동의한다. “그대 말이 맞아요! 마크 트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