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문화가 많이 바뀌어 요즘엔 술을 과하게 마시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 연말에 어쩌다보니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심으로써 배우자한테 혼나고 다음 날 종일 술병을 끙끙 앓으면서 ‘이놈의 술, 다시는 안 마실 거다!’라고 금주를 결심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새해도 며칠 지난 지금, 슬슬 다시 술 생각이 나신다면 다시 한번 절주(節酒)를 다짐하시기 바란다.
이 다짐은 필자에게도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에서 윤 감독, 지 교수 등과 술자리를 함께했는데 나만 고주망태가 되어 심야버스를 타고 전주에 내려온 일이 있기 때문이다.
고주망태는 ‘술을 많이 마셔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취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고주’는 원래 ‘고지’라고 하는 물건인데 메주나 누룩을 만들 때 사용하는 네모난 틀이다. 위아래가 다 터진 이 네모 틀에 콩을 삶아 으깬 메주나 통밀을 빻아 비빈 누룩을 담은 헝겊포대를 넣고 발로 밟아 네모 틀에 맞는 모양으로 빚어낸다.
그런데 이 ‘고지’, 즉 ‘고주’는 술을 거르거나 짜는 데에도 사용하여 한자로는 ‘주자(酒?: ?주자틀 자)’라고 한다. 술을 거르거나 짜기 위해서는 이 고주에 새끼나 노로 엮어 만든 그릇인 망태기를 올려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고주망태기(고주+망태기)’이고, 나중에 ‘기’가 소실되어 ‘고주망태’라는 말로 남게 되었다. 술을 거르거나 짜는 틀이자 망태기인 고주망태는 하루도 빠질 날이 없이 술에 절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뜻이 확장되어 ‘술에 절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취한 상태인 사람’도 고주망태라고 부르게 되었다.
술은 잘 마시면 더없이 좋은 음식이지만 과음을 하면 자칫 패가망신하고 건강도 해칠 수 있다. 술을 ‘벌성광약(伐性狂藥:맑은 본성을 해쳐서 미치게 만드는 약)’이라고 하시면서 내게 절주를 당부하셨던 선친 생각에 가슴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