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달쏭思] 기존(旣存)과 기왕(旣往)

입력 2017-11-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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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딸 결혼식 당일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가 한턱 내겠다며 혼주를 비롯하여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물론, 결혼식에 참석했던 친구들도 다시 모였다. 즐거운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결혼식 당일에 사회를 맡았던 신랑 친구 젊은이가 뭔가를 한아름 들고 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기존에 선물을 수령하지 못한 분들은 하나씩 가져가세요.”

분위기가 왠지 썰렁해졌다. ‘기존에’라는 말도 어색했고, ‘수령’이라는 말은 너무 사무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날, 선물을 받지 못하신 분들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씩 가지고 가세요”라고 하면 될 텐데…. 한자어는 필요할 때는 반드시 사용해야 하지만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한자어를 오용하면서까지 굳이 어렵게 할 필요는 없다.

기존은 ‘旣存’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이미 기’, ‘있을 존’이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 풀이한다면 ‘이미 있는’이라는 뜻이다. 전에도 사용한 적이 있는 이미 있는 방식을 말하는 ‘기존의 방식’이나, 진즉에 출판되었거나 전부터 소장하고 있는 책을 말하는 ‘기존의 도서’ 등과 같은 용례에 비해 ‘기존에 선물’은 적잖이 부자연스럽다. ‘기존에’가 아니라 ‘기존의’라야 맞다.

그런데 ‘기존의 선물’이라고 고쳐 사용한다고 해도 딱히 맞는 말은 아니다. ‘기존의 선물을 수령’해야 한다면 그 선물은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게 되고 만다. 결혼식 당일에 미처 받지 못한 선물이지 옛날부터 쌓아놓고 있던 물건을 수령하지 못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기존’과 혼동하여 쓰는 말로 ‘기왕’이 있다. ‘기왕’은 ‘旣往’이라고 쓰는 데 ‘往’은 ‘갈 왕, 지날 왕’이라고 훈독한다. 따라서 기왕은 ‘이미 지나간 이전’이라는 뜻이다. 기왕불구(旣往不咎 구:허물 구)! 이미 지나간 것은 탓하지 말자는 뜻이다. 기왕에 기존이라는 말을 잘못 사용한 예는 잊고 오늘부터 바르게 사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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